신연수 부장님 안녕하십니까? 지면에서 뵙고 몇가지 여쭙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다름 아닌 지난 10일 동아일보 A35면 사설과 나란히 지면의 머리상자 기사로 실린 ‘농촌 퍼주기로는 발전 못한다’는 칼럼을 읽고 며칠간 고민을 거듭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 것 같아 부족한 글 끄적이고자 합니다.

 

신 부장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농촌과 농업은 도시와 공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때문에 같은 경제학이지만 농업경제학은 별도의 교육과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루는 대상과 범위 또한 다릅니다. 금속, 화학물질과는 달리 살아 있는 생명이 주된 관심의 대상입니다.

 

생산현장도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기계장비들이 즐비한 공장과는 달리 하늘과 땅, 그리고 하천이 함께 하는 논과 밭이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터전입니다.

 

물론 이런 차이를 놓고 신 부장께서 문제 삼은 특혜(?)의 타당성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수많은 공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자동차, 전자제품, 생필품 등 상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선 굴삭기, 트럭 등이 동원돼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내고 있습니다.

 

같은 시간 농촌에선 농부들이 논과 밭에서 농산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사람들의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각기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이들 모두가 우리 국민들의 안락한 삶을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산업중에서도 유독 농업은 일반적인 경제논리로만 풀어가는 것이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생산수단과 생산물이 다르기도 하지만 그 쓰임새면에서 너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편이 뒤따르겠지만 자동차나 휴대전화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먹을 게 없어진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삶이 고단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먹기가 어려워 진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지구촌 나라들을 살펴보면 경제력과 식량생산기반은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식량생산기반 유지에 지나치게 민감한 탓에 필요 소비량보다 더 많은 생산기반을 유지하는 나라들이 바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나라들입니다.

 

농업이라는 것이 변화무쌍한 자연에 의해 좌우되다 보니 생산량이 넘치는 데에도 생산여력은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이 선택한 대안은 상대국 식량시장의 개방이었습니다. 농업경제학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NTC)은 농산물을 교역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은 자국의 식량안보 차원에서 다른 나라 식량창고를 넘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미국 곡물메이저의 하나인 ‘카길’의 구상은 이런 선진국의 이해와 맞물려 UR에 이어 WTO의 출범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FTA를 도모하는 원동력으로 자리합니다.

 

다른 나라들의 식량창고를 넘보려니 당연히 아직 농업기반이 취약한 나라들의 생산기반 조성에 대한 투자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WTO에선 정부가 생산과 관련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차단합니다. 대신에 친환경직불제라는 또 다른 농업보조금 지급의 여지를 열어 뒀습니다.

 

그 결과 WTO출범이후 선진국들의 농업보조금 지출 규모는 오히려 불어났고, 농산물 수출 길을 열어 남는 식량 재고를 처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생산면적과 사육마리수를 줄이는 대신 친환경직불제라고 해서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가축이 사라지고 작물을 재배하지 않는 땅을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용도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언제 기상여건 악화와 같은 긴박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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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종영된 MBC국제시사프로그램 W에서 2008년 방영했던 세계 식량위기 특집편의 한장면.jpg

▲ 지금은 종영된 MBC국제시사프로그램 W에서 2008년 방영했던 세계 식량위기 특집편의 한장면


이 나라들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전쟁을 겪으면서 식량 조달이 여의치 않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으며, 나라마저 무너진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구 소련의 붕괴 역시 먹거리 문제에서 비롯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농민들이 봉기할 때마다 나라의 운명을 달리해야 했던 지나(CHINA,支那) 역시 식량 자급자족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워 오늘날의 성장을 이뤘습니다.

 

오늘 날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스민 시위 역시 본질은 굶주림에 있습니다. 기상이변에 따른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이런 굶주림을 더욱 자극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스민 시위는 3~4배 가량 치솟은 식량을 사들일만한 여유를 지니지 못한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가리켜 식량혁명이라고 말합니다.

 

부동산 자산가격 급락으로 인해 설 땅을 잃은 미국의 금융자본은 식량 생산이 날이 갈수록 여의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국제곡물시장으로 이동합니다. 이후 2003년부터 국제곡물가격은 급등세로 돌아섭니다. 금융자본이 벌어들인 수익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미국의 수많은 인공위성들은 지금도 전세계 곳곳을 반경 100m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사진을 찍어대고 있습니다. 군사 또는 기상관측 목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찍은 사진은 다양한 분석을 가능케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작물 생육상태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학적인 곡물수급 추정은 헐값에 곡물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다시 그 나라에 수입때 보다 3배 높은 가격으로 되파는 놀라운 상술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현재 전체적인 식량자급율은 25%선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쌀을 제외한 나머지 식량의 자급율은 5%에 불과합니다.

 

비관적인 시나리오이긴 하나 지진으로 인한 세계 최대의 채무국인 일본의 재정난이 더욱 악화하고, 엔화와 더불어 CHINA의 달러화 투매 등이 어우러져 최악의 달러화 가치 하락사태를 맞을 경우 심각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식량을 사들여야 하는 우리나라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80년대초 냉해로 인해 쌀을 수입하려 할 때에 국제 곡물메이저가 시세보다 3배 이상 높은 값을 요구해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던 일을 떠올려 볼 때, 식량사정 악화는 세계경제 혼란과 맞물려 우리 사회를 흔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CHINA 또한 기상이변으로 식품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앙등에 따라 20%에 달하는 임금 인상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 CHINA로부터 식량을 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가까워 보입니다.

 

미국이 한미FTA를 진행하면서 가장 민감했던 분야는 다름 아닌 쇠고기였습니다. 그들이 쇠고기를 팔아 이득을 챙기려 한 것일까요? 다름 아닌 축산기반 유지를 위한 안정적인 수급 조절의 도구를 챙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식량생산기반이라는 것은 국방과도 다름없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입니다. 유럽이 WTO 패소와 미국의 보복 무역을 불사하면서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틀어 막았던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농촌이 없는 나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국 국민을 먹여 살리는 농부들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 또한 각별합니다.

 

이제부터 신 부장님의 기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 볼까 합니다.

 

신 부장께선 기사 머리에 “매몰한 소나 돼지 값을 시가로 보상해준다고요? 사업하다가 운이 나빠 부도나면 정부가 세금으로 보상해 주나요?” 라는 의문을 달았습니다.

 

신 부장께선 여러 산업을 두루 취재하고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니, 공공재 성격이 강한 재화나 산업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 정부는 금융산업을 살리기 위해 160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정부의 발빠른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우리 금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에서 보다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취약한 금융기업의 경영시스템은 외환위기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습니다.

 

당시 정부가 공적자금 160조원 이상을 금융산업에 투입해야 할 당위성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대로 방치했다간 경제는 몰론 국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닌지요?

 

구제역 위기는 축산업을 영위하는 농업인들의 위기만이 아닙니다. 본래 돌림병이란 것이 사람들이 조심한다고 피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나서서 개인의 자산인 가축을 강제로 매몰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를 방치해서는 국가적인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인 손실을 막기 위해 개인의 자산을 강제로 매몰해야 했다면 정부가 손실액을 보상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구제역의 원인을 해외여행 다녀온 축산농업인들에게 돌리는 것 또한 지극히 비상식적인 얘깁니다. 정부가 짊어져야 할 국가 방역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힘듭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사물을 다루는 과학처럼 일정한 결과 값을 구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듯이 돌림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지목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런 일도 없습니다.

 

실제로 국내 수의학자들은 구제역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추론만으로 특정 개인에게 구제역 사태의 원인을 묻는 것은 당사자에겐 사망선고에 가까운 일입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부가 특정 축산농업인을 구제역의 원인인양 몰아가면서 지역사회에선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씨족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아이가 돌림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 부모에게 왜 예방을 하지 못했냐고 역성을 내고, 아이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참고로 우리나라에선 매년 크고 작은 가축질병이 발생해 왔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정부가 나서 질병의 원인을 두고 개인을 지목한 일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럴 수 있는 과학적인 명분과 당위성이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구제역 사태를 두고 농가의 방역의식 운운하는 것은 국가방역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 부장께선 농촌 출신, 마음의 고향, 대학시절 농활 등을 거론하면서 농민은 언제나 감싸줘야 할 대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노고가 있기에 국가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닐 수 있는 것입니다. IMF시절로 돌아가서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요 식품 값은 안정적으로 유지됐습니다. 반면 농업인들은 다소 낮은 소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국난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농촌을 지키며,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한 '농업인'입니다. 실직과 사업실패로 인해 살아갈 능력을 상실한 많은 도시 사람들이 농촌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몇 년 뒤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선진국 국민들은 정치인, 기업인, 엔지니어, 학자, 기자 등 분야와 지위를 막론하고 자국의 농업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시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있기에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오늘도 좋은 먹거리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나눌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휴일이나 휴가때 늘푸른 산과 강이 함께 하는 농촌은 도시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경관과 자연을 선사하는 안식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과 학습지에 지친 아이들에게 늘푸른 자연과 생명은 올바른 먹거리 습관과 녹색성장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의 장을 베풀고 있습니다.

 

신 부장께선 농업인과 도시민의 소득을 빗대어 마치 농업인에 대한 지원이 가당치 않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가지 착오가 있습니다. 40~50대 농업인의 소득을 4,300~4,400만원이라고 밝히면서 2009년 도시근로자 소득인 4,603만원보다 거의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40~50대 도시 근로자 소득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40~50대면 교육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이 돈으로 자녀 대학등록금에다 하숙비 대는 것도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더구나 농업인의 소득을 따질 때 직장인들과 같이 임금을 기준으로 명확하게 산출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농업소득은 사료비, 종자비와 같은 영농 자재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소득으로 일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건비, 감가상각비, 이자비용 등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IMF때 160조원에 달하는 국민의 혈세를 집어 삼키며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 논란을 불러 일으킨 금융기업들은 최고의 연봉을 자랑하는 인기 직장으로 계속해서 자리매김 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의로운 것 인지요? 왜 이런 일은 그리 문제삼지 않는 것인지요?

 

만약 농업소득이 도시 직장인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면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왜 드물겠습니까? 더구나 도시 일에 비해 더 쉽고 전망이 밝다면 지금처럼 농촌의 인력이 심하게 줄어들겠습니까? 지금 40~50대 중장년층이 전체 인구의 20%에도 이르지 못하는 마을이 비일비재 합니다. 어린이 또한 찾아보기 힘듭니다. 60대 어르신이 청년회장을 도맡고 있는 마을 또한 수를 헤아릴 수 없으며, 10년이 더 지나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들이 수두룩 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우리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위를 보장하는 농업인을 육성하고 지원해야 하는 일을 온 국민의 소망이자 국가적인 과제가 아닐런지요?

 

신 부장께선 2001년 쇠고기 시장개방이후 한육우 쇠고기 시장규모가 2배이상 팽창했으니 보호나 지원보다는 시장개방을 통한 경쟁력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맞습니다. 요즘 농촌에서 시장개방을 운운하며 열을 올리는 농업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미 빗장은 풀릴 데로 다 풀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보루인 쌀시장 마저 내놔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쌀이 남아돌건 말건간에 의무적으로 일정량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쌀 수급에 많은 부담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신 부장께선 1995년 1조7,756원이던 국내 한육우 생산액이 2009년 4조948억원을 늘어났다고 말합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실질 GDP 역시 539조원에서 1063조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쇠고기 소비가 불어난 GDP에 편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지요?

 

더구나 소의 생산비 가운데 송아지 값을 제외한 나머지 60~70%는 사료비가 차지합니다. 이 시기에는 국제곡물가가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쇠고기 생산비가 몇 배는 올랐을 것이고, 쇠고기 값도 덩달아 오를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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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시장개방이 우리 한육우 산업을 성장시킨 동력이 됐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쇠고기 시장이 개방된지 얼마되지 않아 광우병으로 인해 호주산과 시장을 나눠 갖던 미국과 캐나다산 수입이 중단됩니다. 쇠고기 수입량이 줄어들자 당연히 한우고기 수요가 많아졌고 생산기반이 더 확충되는 특수한 사례를 낳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된지 2년가량 지난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이 크게 늘었고, 구제역으로 전체 사육마리수의 6%에 달하는 한우가 땅에 묻혔건만 산지 한우 값은 오히려 내리고 있습니다.

 

쌀과 함께 우리 농촌을 지탱하는 한 축인 한우사육을 통한 소득 창출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얘깁니다. 이는 바로 미국산 수입 재개와 맞물린 결과입니다.

 

쇠고기 시장개방이 우리 쇠고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시장규모를 더 키웠다는 것은 이런 이유로 인해서 보편화하기 힘든 논리인 것 같습니다.

 

신 부장께선 기사 말미에 ‘보호와 지원만이 능사가 아니다. 농촌이 더 강한 경쟁력을 갖도록 이젠 농업정책의 틀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0.2%의 대기업들이 전체 기업들의 이익중 63%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는 60~70년대부터 시작한 대기업과 중공업, 그리고 수출 위주의 불균형성장에 따른 부작용입니다.

정책적인 배려를 통해 성장한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하청삼아 양극화를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자동차의 오른쪽 문을 조립하는 정규직은 350만원, 왼쪽 문을 조립하는 비정규직은 150만원이라는 사내 하청을 통한 왜곡된 소득분배 구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왜곡된 시장경제의 소득분배는 먹거리와 맞물려 새로운 정치, 사회 문제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먹거리 걱정 없이 잘 산다'는 우리나라에선 매년 100만명의 학생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자니, 다른 쪽에선 '포퓰리즘'이라 비난합니다.

 

식량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현실 또한 왜곡된 분배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명, 농업생산량은 120억명 규모입니다. 이럼에도 식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매년 늘어나 굶어 죽는 사람들 숫자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교우위론은 생산성이 높은 부문은 과감하게 육성하고, 그렇지 않은 부문은 버려서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는 개발도상국들에겐 그럴싸한 얘기였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보다 잘 살기 위해 농업을 뒤로 제껴두고 경쟁력 높은 중공업 위주의 경제성장에 치중했습니다. 생산성이 높은 쪽을 선택하고 집중 육성해서 수출을 늘려 보다 많은 부를 창출하고, 부족한 식량은 사다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식량공급 여건은 갈수록 나빠졌고, 나라 사정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형편이 낫긴 하지만 우리나라 또한 이런 모순으로 부터 언제나 자유로울지 의문입니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불균형 성장정책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이후에 특정 산업에 집중된 정책 지원에 따라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산업과 계층을 지원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UR, WTO, FTA를 비롯해 마늘과 휴대폰을 둘러싼 CHINA와의 협상에 이르기 까지 그동안 다른 산업을 위해 희생을 떠안기만 했던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지원을 통한 식량기반 확충은 아랑곳없이, 이제 와서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한 '경쟁'을 요구합니다. 이게 앞뒤가 맞는 말인지요?
 
이제야 말로 그동안 비교우위에서 언제나 뒤로 밀려야 했던 농업을 되살리고, 불균형 성장정책의 전제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획기적인 농업정책의 틀을 새로이 짜야 할 때가 아닌지요?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논리와 기업의 논리를 헷갈려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국가는 기업과 달리 이익이 높은 쪽만 계속해서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될 일입니다.

 

기업이 직원들을 위한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과 질병으로 부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들을 위해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돌림병을 차단해야 하는 책무가 있습니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가 이익 보다는 지출이 많고, 경제성장과 물가관리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국민의 먹거리와 질병을 시장과 민간에 맡겨 놓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신 부장께선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중 하나로 손꼽히는 언론사의 산업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습니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것 만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를 일일이 챙기는 역할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잘 짜여진 글 솜씨에 이끌린 정책 당국자가 내용을 따져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식량생산 기반이 위축되고, 훗날 후손들이 이로 인해 먹거리 문제로 시달린다면 이를 어찌 하겠습니까?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농업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부탁드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식량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과 우리의 대처역량을 살피고자 합니다.

 

지금 정부는 일본의 재앙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문을 보니 다행이 피해를 입은 지역이 농촌이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농촌의 파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원전사태는 식량 생산에 치명타를 입히는 방사능을 곳곳에 뿌려대고 있습니다.

 

반면 土建에서 참패를 겪은 뒤 국제곡물시장에 돈을 쏟아 부은 미국 금융자본, 그리고 곡물메이저들은 미소를 머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식량기반인 농촌이 파괴됐고, 원전의 방사능 유출은 식량공급에 치명타를 가할 겁니다.

 

원전시설이 핵폭탄을 돌변할 때 당장의 피해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닥치는 식량기반의 황폐화가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이게 회복이 가능할런지 의문입니다. 방사능에 노출된 땅에서 자라난 동식물을 먹은 사람들이 과연 괜찮을까요? 영원한 회복의 걸림돌로 남을 공산이 큽니다.

식량자급률 40%의 식량 수입대국인 일본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가뜩이나 기상이변을 틈타서 급등하고 있는 국제 곡물가는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겁니다.

뿐만 아니라 재난 복구에다 식량조달을 위해 일본이 전세계에 흩어진 채권 회수에 나설 경우 세계 금융 또한 요동칠 공산이 큽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CHINA의 식량공급 위축 또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20%에 달하는 임금인상을 초래한 식품값 폭등이란 숙제를 떠안고 있는 CHINA가 달러를 풀어 일자리 보장을 위한 두자리수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밖에서 식량을 들어오려 한다면 달러화 가치 폭락이 본격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은 우리를 더 옥죄고 있습니다. 과연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5%의 식량부족국가인 우리나라의 위기 대처역량은 충분한 것일까요?

 

지금도 한국은 반도체 수출을 통해 얻은 수익 전부를 식량을 사다먹는데 온전히 쏟아붓고 있습니다. 한 번 잃어버린 식량생산기반은 복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식량을 외국에 의존해 온 나라가 식량수입의 늪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입니다.

 

일본 원전사태는 일본 현지는 물론 CHINA에서 식품사재기 현상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벌써 식량위기가 들이닥친 듯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입니다.

 

중동의 자스민 혁명을 불러 일으킨 주범으로 꼽히는 식량난이 올해 동아시아에서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20%에 이르는 임금 인상을 초래한 CHINA의 식품값 인상, 300만명의 떼죽음을 불러 올 수 있다는 북한의 식량난, 그리고 일본 원전 방사능 유출이 불러 온 식품 사재기 현상과 식량생산기반 훼손 등이 그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충분한 대처 능력을 갖췄을까요?

과연 지금 온 국민의 먹거리를 감당하고 있는 우리 농민, 농촌, 농업에 ‘경쟁’을 요구할 만큼 식량생산기반 확충에 만전을 기해왔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과거 국가농업예산 몇 년치를 더한 것을 두고, 마치 새로운 재원을 마련한 듯 45조원, 100조원을 내세우면서 농업부문의 투자를 과장해 왔던 우리 정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부가 부풀린 농업예산가운데 복지, 건설쪽으로 투입된 예산을 제외하고, 끌어들인 농협 돈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정부가 농업 생산기반에 얼마나 투자를 했는지 의문스럽기만 합니다.

 

정부는 수십조원을 투입해서 당초 농업용지로 쓸 목적으로 개발한 새만금 간척지의 70%를 국제도시, 레저시설로 활용한다면서 10조원을 더 들인다고 합니다. 인천 송도신도시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실정을 볼 때에 투자의 효율성이 의심스럽습니다.

 

눈앞에 둔 기상이변과 식량위기, 그리고 통일을 준비한다면 당초 새만금 간척지 조성의 취지를 살려 농업생산기반 확충쪽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지요?

 

우리 국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농업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 판단과 예산 지원은 우리나라에선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P.S. 1990년대초 UR협상에 반대하는 농민시위를 우호적인 관점에서 보도한 언론은 한겨레, 동아일보 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경향신문과 동아일보가 그 자리를 맞바꾼 것 같습니다. 두서 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신데 감사드리며,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소개 합니다.

 


▲ 지난 2006년 EBS에서 방영한 영상입니다. 우리나라가 지닌 국가 위기대처능력의 취약성을 한 눈에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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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신연수] 농업, 퍼주기로는 발전 못한다

 

“매몰한 소나 돼지값을 시가로 보상해준다고요? 사업하다가 운이 나빠 부도나면 정부가 세금으로 보상해 주나요?”

어느 중소기업인들의 저녁자리는 구제역 얘기가 나오면서 냉랭해졌다. 처음엔 ‘구제역이 빨리 끝나야 한다’며 걱정하는 말이 이어지다가 화제가 보상금에 이르자 의견이 찬반으로 갈렸다.

전염병은 천재지변에 가깝고, 보상을 안 해주면 신고를 안 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보상해줘야 한다는 사람이 한편이었다. 다른 편에선 소 돼지를 수백 마리 키우는 기업형 농가에 대해서도 100% 보상해줘야 하느냐, 구제역 감염에 대한 농장주의 책임을 더 엄격히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이 강했다.

구제역, 정부만 탓할 수 없다

결국 결론 없이 모임은 끝났다. 이번 구제역을 겪으며 달라진 풍경이다. 농민이나 농업에 대해 이처럼 비판적인 분위기를 전에는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도시인들에게 농촌은 마음의 고향이었고, 농민은 언제나 감싸줘야 할 대상이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농촌 출신이거나 어렸을 적 친가나 외가 시골 마당에서 뛰어놀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가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농촌의 가난’을 끊어낼 방안을 토론하며 밤새운 경험이 없는 중장년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후 2000년대 후반까지 농산물 시장 개방과 보상을 둘러싸고 농민과 시민단체들의 도로점거, 농성시위가 이어질 때도 동정론이 강했다. 농업에 관한 한 농민은 항상 선(善)이고 정부나 외국은 악(惡)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방역작업을 하다 순직한 공무원 8명, 지금까지 직접 피해액만 3조원, 도살처분한 가축 340여만 마리, 게다가 아직은 피해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환경 재앙…. 이런 사상 최악의 구제역이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축산농가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다.

지난해 5∼11월 해외를 다녀온 축산 관계자는 2만6000여 명, 이 중 9400여 명이 신고도 하지 않고 검역도 받지 않았다. 일부 농장주는 축사에 들어가면서 소독도 제대로 안 했다고 한다. 구제역 발생 신고를 늦추거나 매몰처분한 가축 수를 부풀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물론 이런 도덕적 해이를 보인 농가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대부분의 농가는 죽을힘을 다해 방역을 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역병에 자식 같은 가축들을 잃고, 생계 수단마저 잃었다.

그럼에도 이번 재난을 보는 국민의 시각은 예전 같지 않다. 구제역 확산의 책임으로 정부의 어설픈 대응과 함께 농가의 방역의식을 문제 삼는 것이다.

농촌에 대한 미신에서 벗어나야

그러고 보면 아직 많은 사람이 농촌에 대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 몇 가지 사실을 보자. 농촌은 도시보다 못살까? 2009년 도시근로자 소득은 연평균 4603만 원. 농가소득은 3081만 원으로 도시의 70%에 불과했다. 그러나 70, 80대 노인을 뺀 40, 50대 농민의 소득은 4300만∼4400만 원대로 도시근로자와 비슷했다.

강원도에서 농장 8개를 ‘경영’하는 한 농가는 이번 구제역 보상금으로 111억 원을 받게 되고, 경북 안동의 형제 농장주는 155억 원을 받을 예정이다.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 우리 농민이 다 망할까? 2001년 쇠고기 수입 개방 이후 국내 한우와 육우는 품질이 좋아지고 값도 비싸졌다. 쇠고기 시장은 두 배로 커졌다. 1995년 1조7756억 원이던 국내 한·육우 생산액은 2009년 4조948억 원으로 늘었다.

농촌은 지금보다 더 잘살아야 한다. 다만, 보호와 지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농촌이 더 강한 경쟁력을 갖도록 이젠 농업정책의 틀을 바꿀 때가 되었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동아일보 2011-03-10 03:00:00
Posted by ezfar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