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유일한 가금류 천연기념물인 연산오계는 자녀 학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면서, 적잖은 가산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던 태조 이성계 후손의 애닯고 끈끈한 가족사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왔던 다양한 생명과 음식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지난 375년동안 6대에 걸쳐 그랬듯이 연산오계의 지속 가능한 삶을 더 이상 어느 가족, 아비와 자녀가 대물림하고 떠맡게 해선 안된다.

천연기념물의 지속 가능한 삶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키고 가꿔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맞춰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슬로푸드운둥은 한국 맛의 방주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생명의 다양함이 곧 건강한 맛의 다양성이란 평범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려 하고 있다.

 

지금 지구촌 60여개국에선 900여개의 향토음식과 토종종자를 담은 맛의 방주,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320여개의 프레지디아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 슬로푸드본부 역시 전세계 맛과 생명종 다양성을 위한 공동체 지원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토종종자와 전통음식의 목록화, 그리고 프레지디아의 구성과 운영까지 국제사회가 지원할 수 없다.

 

생명종 다양성과 맛의 다양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늘어나고 자발적으로 소멸위기에 놓인 토종종자, 그리고 이를 이용한 전통음식의 발굴과 복원을 위한 공동체가 꾸려질 때 비로소 국제사회와 함께 우리 모두를 위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10월 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국제대회(Asio Gusto)를 앞두고 소멸위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토종 종자와 향토음식을 발굴・복원하고 지속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한국 ‘맛의 방주(Ark of Taste)’프로젝트가 본격화하고 있다. <에그리뉴스>는 이에 따라 ‘한국의 토종을 찾아서’ 기획연재를 통해서 우리나라 고유의 맛과 생물을 찾아보고 맛과 생물종 다양성의 중요성을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국의 토종을 찾아서(2) 충남 논산 지산농장 ‘연산 화악리 연산오계’

 

지난 20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길 70번지, 천연기념물 265호 국가지정 사육장인 지산농장에선 이채로운 행사가 벌어졌다. 다름아닌 지난 2003년부터 해마다 열린 연산오계문화제다.

 

연산오계문화제는 애초 명칭이 오유공 위령제였던 것 만큼 올해 또한 제 명을 다한 연산오계의 넋을 위로 하는 의식을 치렀다.

 

연산오계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낸다고 하니 적잖은 이들이 색다르게 받아들일 법도 하지만 벌써 11년째 해마다 이어지고 있는 의식이다.

 그도 그럴것이 연산오계문화제를 매년 열고 있는 지산농장 대표 이승숙씨의 가족사는 연산오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375년 6대가 오계와 함께 대물림한 아비와 자식의 약속

 

이씨 집안과 연산오계의 필연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아들인 익안대군 방의씨의 아들인 학산공 오륜씨가 연산면 화악리에 정착하면서 비롯한다.

 

오륜씨의 아들 통정대부 형흠씨는 철종때 연산오계를 진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이 씨의 고조부인 창식씨에 이어, 연산오계를 길러 온 이 씨의 증조부인 선재씨가 고종때에 연산오계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 씨가 그랬듯 선친의 유언을 이어받아 연산오계의 혈통을 계승해 온 계순씨는 1968년 처음으로 논산교육청을 통해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정부에 신청했다.

 

당시 계순씨는 흰색 연산오계 수탉 1마리, 암탉 5마리와 검은색 연산오계 수탉 1마리 암탉 6마리 등 털색을 구분해서 사육하며 혼종을 막았다고 한다. 계순씨의 연산오계 사육은 남달랐다. 인삼가루를 사다가직접 캔 잔대와 도라지 뿌리를 사료에 섞어 급여했다고 한다.

 

계룡산 중턱에 연산오계를 방사해서 온종일 지켜보고 기다린 적도 많았다. 뿐만아니라 계순씨는 인근에서 질병이 번지면 연산오계를 깊은 산중으로 옮겨 병이 가실 때 까지 기다리곤 했다.

 

계순씨의 이런 남다른 연산오계를 향한 정성은 아들인 래진씨, 그리고 손녀인 승숙씨에 이르기 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계순씨는 연산오계를 키운지 46년째인 1968년 이렇듯 소중하게 보존한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받기 위해 청와대에 보낼 흰색 연산오계 한쌍을 별도로 길렀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계순씨는 일종의 돌연변이인 흰 연산오계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 씨는 한해에 흰 연산오계는 한두마리 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귀해서 그랬을까? 계순씨는 이 돌연변이를 별도로 구분해서 검은색 연산오계와 차단해서 혼종을 막았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음을 볼 때 검은 연산오계와 달리, 별도의 종으로 흰 연산오계를 다뤘음을 알 수 있다.

 

계순씨가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나라에 청한 까닭은 연산오계가 육종을 거쳐 키우기 쉽고 잘 자라는 서양에서 전해진 닭에 비해 기르기가 까다롭고 잘 크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장차 연산오계를 기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씨 집안 선대 어른들이 그러했듯이 누구보다 연산오계에 대해 잘 알고 학의학에도 밝았던 계순씨는 연산오계를 이용한 민간요법으로 주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했건만 강인하고 야성을 지녀 기르기가 어려운 연산오계는 더 이상 생명을 잇기가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이 씨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계순씨는 자녀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래진씨가 사업을 한다며 집을 자주 비우는 통에 할아버지를 아버지인양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족했다고 한다.

 

아버지 래진씨가 잦은 사업 실패로 인해 가산을 탕진했지만 계순씨는 이런 아들을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고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후원했다고 한다.

 

계순씨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등록을 실현하지 못한채 천연기념물을 신청한지 6년째 되던 해인 1974년 운명을 달리한다. 


계순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래진씨는 죄책감에 못이겨 술로 날을 지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래진씨는 아버지가 간절하게 바랬던 소망을 접한다. 그것은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는 간곡한 아버지 계순씨의 사연이었다.

 

이후 래진씨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연산오계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조상이 물려준 재산을 자식들을 위해 쓸 수 없다면서 집안에서 물려준 땅을 팔아서 오로지 연산오계를 키우는 데에만 집착했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연산오계에 대한 래진씨의 애착은 가세마저 기울게 했다.

이 씨는 아버지처럼 알고 지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집안 경제의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아버지가 연산오계에만 집착한 나머지 있는 돈, 없는 돈 가리지 않고 쏟아 붓다 보니, 월사금조차 낼 수 없었던 이 씨는 교무실 복도에서 두 손을 든 채 무릎 끓고 벌서야 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이 씨는 학비 걱정에 원했던 대학을 스스로 포기하고, 장학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한동안 그에겐 연산오계와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힘겹게 한 원망의 대상이었다.

 

이 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10년 남짓 일간신문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세상을 쫓아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기자는 매력있는 직업이다. 더구나 이 씨가 속했던 정치부 기자의 주된 취재원은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한 정치인들이니 만큼, 그의 일과 삶이 평범하기 보다는 화려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기자는 수많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지만 그 속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담을 수는 없다. 항상 주변인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까닭에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마음 한 구석엔 허전한 무언가를 남겨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나라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시기에 이 씨 또한 인생의 큰 변화를 겪는다.

 

그토록 원망하던 아버지 래진씨가 몸져 누운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바꿔놓은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8년, 그가 다니던 언론사는 파업을 했고 그 틈에 예상치 않은 휴가를 얻은 이 씨는 고향집에 들렀다.

 

오랜기간 당뇨병 합병증으로 고생해 왔던 래진씨는 두어달 정도 살 수 있다는 시한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때부터 이 씨는 틈만 나면 집에 들러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보살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 연산오계를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을 알게 됐다고 한다.

 

딸을 자주 만나는 기쁨때문이었는지 병원측의 진단과는 달리, 래진씨는 그로 부터 4년을 더 살았다. 그 기간동안 이 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다.

 

이 씨는 “아버지는 열세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병실에서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는 큰 가르침으로 남았다. 연산오계를 통해 나는 자랑스런 아버지를 되찾고, 만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인연인가”라며 연산오계와 함께 대물림해 온 끈끈한 가족사를 전한다.

 

이 씨가 자랑스러워 할 만큼 래진씨는 실제로 연산오계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큰 일을 해냈다.

 

이 씨의 부친인 래진씨는 이런 선친의 바람을 실천에 옮겨 지난 1980년 4월10일 가금류에선 유일하게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256호 지정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이 씨의 할아버지 계순씨가 연산오계가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 낸 묘안인 천연기념물 지정이 12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농업과 생명의 가치’를 몸으로 실천한 연산오계 지킴이

 

지난해 5월 2일 이 씨는 2004년 9월 4일부터 8년간 글을 써 온조선일보 블로그 활동을 마감하면서 인상깊은 글을 남긴다.

 

그는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1년간 휴직하고 고향으로 향한 이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못했다. 2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아버지가 4년을 더 버텼고, 떠안은 연산오계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훌훌 털고 나설 수 없었다”며, “자신의 꿈 또는 생각이나 결정과 상관없이 강풍에 떠밀리고 급류에 휩쓸리 듯 인생길이 달라져 버린 운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런 귀향에 따른 어려움도 호소했다.

 

이 씨는 “고향이라고 하지만 친구도 없고 변변한 모임 하나 없는 시골에서 외롭고 힘든 일상을 보내던 제게 블로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며 “댓글님들의 관심과 응원이 제 고된 삶을 위로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술회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 있어 가난과 희생, 그리고 인내를 강요하는 ‘농민’ ‘농촌’ ‘농업’ 은 벗어 던져야 할 굴레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적잖은 이들이 인생 2막을 고향에서 설계했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귀향인들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금새 차가워지기 일쑤였다. 서울에 갔다가 고향으로 되돌아 온 젊은이가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일도 적잖다. 때로는 남다른 학벌과 빼어난 경험이 오히려 극복해야 할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수출위주의 중공업에 치우친 빠른 경제성장은 힘겹고 궁핍했던 ‘농촌’의 기억을 지우는 데 한 몫했다.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불균형성장의 불가피성 역시 우리 사회의 농민 농촌 농업 지우기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 씨가 말하는 “자신의 꿈 또는 생각이나 결정과 상관없이 강풍에 떠밀리고 급류에 휩쓸리 듯 인생길이 달라져 버린 운명”이나, “고향이라고 하지만 친구도 없고 변변한 모임 하나 없는 시골에서 의 외롭고 힘든 일상”은 지금도 여전히 농촌이 처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씨는 지난 8년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를 가리켜 은행의 귀중품 보관창고에 빗대어 ‘추억의 보관창고’라고 말한다.

 

과거 10년간 남의 이야기를 받아 쓰고 파헤치며 속뜻을 풀이 했던 것과는 달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옮긴 블로그의 글들이 신문 지면에 실렸던 기사 보다 더 가치있고 소중해 보였을 게다.

 

연산오계를 소개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 씨의 삶을 스토리로 삼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남들이 지니기 힘든 경험과 기회, 그리고 학벌을 버리고 조상으로부터 이어 받은 토종 연산오계의 생명을 이어가는 이 씨의 마음이 가난한 삶을 말한다,

 

그런데 글쓴이는 잃었던 아버지를 사랑을 되찾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물림해 온 한국의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의 생명지기를 자처한 그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하고 바른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언론이 하나밖에 없는 천연기념물의 명맥을 이어가는 삶의 가치보다 도시에서의 남달랐던 삶을 더 내세우는 까닭은 빠른 경제성장에만 집착한 나머지, 농촌을 애써 버려야 했던 일그러진 우리 삶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힘들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연산오계의 생명을 잇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털어 내는 이 씨는 살아 있는 천연기념물 ‘연산오계’만큼이나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연산오계는 먹거리가 아니라 보약이다
 

생명종 다양성 운동의 일환이자, 우리 농업의 가치를 일깨우는 슬로푸드문화원이 추진하는 ‘한국 맛의 방주 프로젝트’얘기가 나오자, 그는 용봉탕을 우리 토종의 맛으로 등록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집안대대로 간직해 온 용봉탕의 원형을 얘기할 때 그의 얼굴을 상기돼 있었고, 목소리는 들 떠 있었다. 

 

이 씨는 “일부에선 용봉탕에 자라나 지네가 들어가는 것 마냥 떠들어 대지만 실제 임금이 취하던 용봉탕은 용을 상징하는 잉어와 봉황에 빗댄 닭을 주재료로 한다”면서 “연산오계와 잉어, 그리고 더덕과 인삼을 함께 넣어 달인 국물이 바로 용봉탕의 본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이 용봉탕을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용봉탕을 위한 레시피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서 “(우리 집안은) 연산오계를 6대째 기르며 임금께 진상해 왔던 만큼 연산오계를 이용한 용봉탕을 만드는 방법 또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임금께 진상하던 연산오계를 이용해서 만든 용봉탕에는 고기와 같은 건더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며 “연산오계의 검은 뼈와 고기, 그리고 잉어, 더덕, 인삼 등을 한데 섞어 고아낸 국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375년째 6대에 걸쳐 연산오계의 명맥을 이어 온 명가의 생명지기가 하는 말이니 만큼. 그냥 흘려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이 씨가 설명하는 임금이 즐기던 용봉탕의 원형은 지금의 삼계탕 보다는 얼마전 경기도 남양주시 슬로푸드문화원에서 가진 슬로푸드 지미교육 기초과정에서 접했던 프랑스인 셰프 로랭 달레가 선보인 콘소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임금을 위한 진상품으로 쓰인 것 만큼 연산오계는 아주 특별한 요리 재료이다.

 

연산오계는 일찍이 음식이라기 보다 보신용 내지는 약용으로 널리 쓰였다.

 

연산오계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재정 이달충의 문집인 ‘재정집’에 신돈이 나이들어 오계(烏鷄)와 백마(白馬)를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권세를 누리던 승려 신돈이 오계로 쇠한 정력을 보충했다고 하니, 그 쓰임새가 일반 먹거리와는 남달라 보인다.

 

태조 이성계의 증손주인 통정대부 형흠씨, 그리고 이 씨의 증조부인 선재씨가 철종때와 고종때 연산오계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앞서 병을 앓던 숙종이 오골계를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연산군은 일반 백성은 물론 정승도 오골계를 먹지 못하게 했으며, 이를 어기면 관직을 빼앗고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조선의 명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웅계육, 즉 검은 수탉의 고기는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독이 없다. 이는 가슴이 아픈 심통과 배가 아픈 복통에 주로 쓰인다. 검은 수탉은 명치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풍습으로 경련이 일고 마비된 것을 치료한다. 또 허하고 여윈 것을 보하고 태를 튼튼하게 하고 골절과 심한 종기인 옹저를 낫게 한다. 대나무가시가 박혀 나오기 않을때 검은 수탉의 생고기를 붙인다.

 

연산오계 수탉은 놀라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을 진정시키며, 산모의 대하증, 자궁출혈을 치료하는 데에도 쓰이기도 한다. 

 

동의보감은 ‘오자계육’이라해서 검은 암탉의 고기를 구별하여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검은 암탉의 고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려 독이 없다. 또 관절이 쑤시고 저린 풍한 습비에 주로 쓰며, 심한 위장병인 반위를 보한다. 연산오계 암탉은 웅저를 치료하고 고름을 빼낸다. 뿐만 아니라 새 피를 보충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 검은 암탉은 산후에 허약해진 산모를 돕는 효능이 돋보인다.

 

연산오계 암탉은 풍과 마비증세, 신경통과 타박상, 골절 등에 효과가 있으며, 간장 신장 늑막열을 치유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특히 ‘뼈와 털이 모두 검은 연산오계가 가장 좋다. 눈이 검은 새는 뼈도 반드시 검으니 이것이 진짜 연산오계’라며, 연산오계의 특징을 묘사하면서 몸을 보하는 효과가 큰 고기임을 강조했다.

또한 ‘연산오계가 중풍에 특별한 효과를 보인다’면서 중풍으로 말이 어늘한 것과 풍한 습비를 치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국을 끓일 때, 고기와 함께 파, 천초, 생강, 소금, 기름, 간장을 넣고 푹 삶는다며 요리방법까지 일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축산물에 비해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연산오계는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리놀렌산을 쇠고기의 7배~8배, 돼지고기의 3배인 22.6%가량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족의 영물’ 삼족오를 연상케 하는 강인한 풍모

 연산오계의 독특한 쓰임새 보다 더 소중해 보이는 것은 그 만이 지닌 남다른 모양새이다.
 

연산오계는 발가락이 4개이며, 다리엔 잔털이 없다. 이런 점에서 서양 오골계나 혼혈 오골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몸을 지탱하는 작은 뒷발을 뒤로 한 채 기다랗게 늘어선 세 발, 크지 않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단단한 몸 맵씨 그리고 진한 검은색 눈과 검붉은 벼슬, 여기다 청록빛이 감도는 검은 털은 그야말로 민족의 영물인 ‘삼족오’를 떠올리게 한다.

 

연산오계는 강원도 험준한 산골짜기에 살아남은 칡소 만큼이나 강인한 모습과 당당한 풍모, 그리고 토종 고유의 날선 몸매가 자랑한다.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자면 보통 닭과는 종이 다른 생물이라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칠흑같이 까만 눈에 청록빛이 감도는 윤기나는 검은 털, 그리고 날랜 맵씨가 돋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몸매는 일반 닭과 격이 다른 품새를 자아낸다.

 

자연속 야생의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연산오계
 

연산오계(혼종)와 토종닭이 싸우는 장면 (지산농원과는 무관). 출처 : http://blog.daum.net/ljs38860/53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것은 연산오계가 물려받은 야생의 기질이다.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 탓에 연산오계의 야생성은 일반 닭과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차이기도 하다.

 

연산오계는 날아서 나뭇가지위로 어렵지 않게 오르는가 하면, 곡물사료보다 벌레나 풀, 모래 등을 더 즐겨한다.

 

그리고 체질이 약한 닭을 공격하며 새로운 무리를 몰아내는 습성은 꿩을 연상케 한다. 야생성이 강하고, 거친 외모만큼이나 일반 닭보다 질병에 강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피를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연산오계의 호전성은 토종 특유의 호전성을 엿보게 한다.

 

수탉들 사이에서 다툼이 종종 일어나기 일쑤다. 이런 싸움속에서 어느 한쪽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한다고 한다.

 

가끔 사람에게 대들어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계모 이씨 역시 수탉의 며느리발톱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 씨는 “암탉보다 체구가 큰 수탉은 번식력이 왕성해 교미를 위해 암탉을 쫓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며 “수탉이 교미하면서 암탉의 깃털을 뽑아버려 오래 묵은 암탉은 털이 많이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수탉의 번식력이 넘치는 만큼 암탉의 모성애 또한 남다르다. 연산오계는 일단 알을 안으면 병아리가 태어날 때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지 않는다고 한다.

 

연산오계의 엄마를 자처하는 이 씨의 일기에서도 연산오계 수탉의 야성(野性)이 잘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9일 연산오계 홈페이지 ‘계모(鷄母)의 농장일기’에 따르면 ‘아이(병아리)들이 크면 일진방, 무녀리방, 환자방, 중환자방, 장애아방 등 방이 여러 개 필요하다. 어렸을 적엔 큰놈, 작은놈, 암놈, 수놈 모두 한 방에서 키워도 되지만, 중병아리 쯤 되면 무리를 나눠 각 방을 쓰게 해줘야 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조숙한 수컷들이다. 대개 암탉보다 수탉의 성장속도가 빠른데 수탉 몇마리는 부화한 지 6개월이 채 안 됐는데 거의 종계급이다. 이런 덩치들이 너덧 마리씩 떼 지어 다니며 바닥에서 어슬렁거리면 체구가 작은 닭들은 무서워 홰위에서 내려오지도 못 하고 사료와 물도 눈치껏 먹어야 한다.
 

성장이 더딘 무녀리 수탉들의 고충도 크지만 암탉들이 겪는 괴로 움과는 비교할 수 없다. 체구가 남자 어른에 해당하는 큰 수탉들은 눈에 불을 켜고 중학생에 불과한 작은 암탉들과 흘레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암탉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으므로 어쩌다 수탉 한 마리가 흘레에 성공하면, 다른 수탉들이 사방에서 득달같이 달려와 현장을 에워싼다. 만신창이가 된 암탉은 사경을 헤매거나 죽기도 한다. 지금까지 암탉 네 마리가 희생됐다. 두 마리는 다리가 부러졌다. (2012.12.9.‘계모(鷄母)의 농장일기’)

 

계룡산 반경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가 아니다
 

연산오계는 지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해 분양을 통한 사육기반 확대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계룡산 사방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의 특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 씨는 “학계에선 연산오계가 다른 지방으로 나갈 경우 3대째(F2)부터 유전자 형질에 가시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은 마치 금성산 자락에 위치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운곡리 일대, 그리고 경북 청도군 일대의 감나무를 연상케 한다.

 

이들 지역에선 감에 씨가 없다. 그런데 이들 지역 감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감속에 씨가 생긴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은 그 이유를 ‘흙’에서 찾고 있다. 화산활동과 같은 큰 변화로 인해서 그 지역 토양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사례는 국내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항산화 능력치(ORAC)가 블루베리의 22배, 석류의 23배, 적포도의 55배, 키위의 120배에 이르는 슈퍼푸드 '아사이베리'는 소주잔 한컵 분량의 원액이 5만원에 팔릴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런데 이 '아사이베리'는 전 세계에 단 한 곳에서만 생산된다. 그 곳은 바로 사람들의 발 길이 닿지 않는 자연의 보고인 아마존강 유역이다.  

자연속에서 태어나 자라는 생물의 특성상, 지역성이 중요한 변수로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해 온 연산오계는 지역에 대한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지역이 지닌 특성에 오랜기간 적응한 생명의 신비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묘하게도 지산농원이 위치한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선 수많은 까마귀떼가 종종 출몰한다. 지산농원이 자리잡은 계룡산 자락은 연산오계 뿐만 아니라 까마귀에게도 좋은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토종자원인 오골계와는 전혀 다른 품종

 

연산오계를 오골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일본의 토종자원으로 분류된 오골계와는 분명히 다른 품종이다.

 

오골계는 일본의 천연기념물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 FAO)에 일본의 오골계는 'Ogolgye'로 등록된 반면, 연산오계는 Yeonsan Ogye로 등록돼 있다.

 

연산오계는 벼와 털, 피부, 눈자위, 눈동자 심지어 발톱까지 모두 검은 색을 띠고 있는 반면 오골계는 실크처럼 부드러운 솜털 속에 검은 뼈를 지니고 있다.

 

연산오계는 한때 오골계라고 불리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지 28년만에 이 씨가 되찾은 이름이다. 우리 고유의 토종자원에 까지 퍼진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낸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3월 26일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회의를 열고 천연기념물 265호 연산 화악리 오계에 대한 명칭변경에 대한 심의를 벌여서 일제 강점기때 오골계로 바뀌어 불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산오계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돌림병에 따른 몰살 막기위한 대책 마련 시급
 

6대에 걸친 아비와 자식간의 약속은 375년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12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룬 천연기념물 등록만으로 연산오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낙관은 금물이다.

 

지난 1981년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1962년 천연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된 경남 기장의 오골계가 돌림병으로 몰사하면서 1981년 지정 해제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씨의 할아버지는 질병이 돌 때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연산오계를 보호했고, 이 씨의 아버지인 래진씨 또한 이런 일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기장의 오골계가 당했던 처참한 일이 연산오계를 덮치기도 했다. 근래 잦아진 돌림병이 연산오계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하는 문제는 일부 몇가지 사례에서도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지난 1970년 몰아닥친 돌림병으로 인해 래진씨는 기르던 연산오계가 집단폐사하는 일을 겪었다. 다행이 래진씨는 8마리를 간신히 건져 연산오계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아예 바다를 연산오계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2005년 12월 가금인플루엔자가 창궐하자, 이 씨는 인천 앞바다 무의도에 위치한 유기농포도농사를 짓는 실미원 농장의 협조를 얻어 수탉 4마리, 암탉 29마리를 트럭과 배를 통해 옮겼다.

 

2008년 4월에도 신종 가금인플루엔자 HAPI가 퍼지면서 연산오계문화제를 무기한 연기하고 피난 작전에 나서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연산오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지역을 발굴해서 다양한 지역에서 연산오계를 기르지 않는 한 몰살의 위험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연산오계는 외부 분양을 금지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의 지정 농장은 이 씨의 지산농원이 유일하다. 몰살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육지의 다양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이 씨는 과거에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연산오계를 보존하고 육성한다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이제 더 이상 나라의 천연기념물인 연산오계의 혈통 보전을 개인에게 짐지우기 보다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협력해서 짐을 나누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근친교배 피해 방지위한 사육지 다양화도 숙제
 

한 곳에서만 오랫동안 계속해서 사육하다보니 근친교배에 따라 열성인자가 만연하는 것 또한 문제다.

 

지난 2004년 5월 이 씨는 기르고 있는 3,000마리의 연산오계 가운데 열성인자를 보유하지 않는 것은 4.2%에 불과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지속가능한 보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늠름한 모습의 강인한 연산오계를 갈수록 보기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지산농원은 과거에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인근에 새로운 농장을 조성해서 연산오계를 길렀으나 주변 주민들의 반발로 새 농장을 포기하고 다시 지산농원으로 오계 식구들을 불러 들여야 했다.

 

당시 지산농원은 기존 농장에서 변함없이 살고 있었던 연산오계들이 다시 집을 찾은 형제인 연산오계 무리를 견제하는 탓에 일부 오계들이 바깥에서 숨지는 것을 비롯해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과도한 생산비 부담에 수익성 낮아 식당운영 도움 안 돼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길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연산오계 사육은 음식점 경영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씨는 지속적인 종계 확보와 후대 생산을 주목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이 씨에게 있어서도 연산오계 음식점은 도태하는 종계와 암탉, 그리고 종계가 되지 못한 수탉을 처분하는 통로이자, 사육비를 조달하는 창구다. 

천연기념물을 보존하는 대가로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긴 하지만 그 것만으론 턱없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연산오계의 낮은 수익성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연산오계는 말이 가금이지 사실상 야생조류에 가깝다. 그만큼 기르기가 쉽지 않다. 특유의 야성으로 인해 강한 기질을 타고 났지만 A4용지만한 좁은 면적에서 집단 사육하는 일반 닭처럼 기를 수 없다. 그랬다간 다툼이 일어나거나 죽기 일쑤다.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두달이면 다 자라는 개량 닭과는 달리 적어도 6개월은 키워야 한다. 손쉬운 배합사료는 잘 먹지 않는다. 그 보다 벌레, 풀, 모래 등을 즐긴다.

 

일반 육계농가들은 일년에 부지런하게 일하면 일년에 6차례 큰 닭을 집단사육해서 길러낼 수 있다. 그런데 연산오계는 많아 봐야 일년에 두 번 큰 닭을 출하할 수 있다.

 

달걀 생산도 일반 산란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연산오계 암탉이 부화할 수 있는 크기의 달걀을 생산하려면 8개월~12개월 자라야 한다. 일반 산란닭보다 길게는 두배이상 길러야 하는 셈이다.

 

연산오계 암탉의 마리당 달걀 생산량은 일년에 100개 정도로 산란닭보다 30%~40% 적다. 그나마 철장을 쌓아 가둬서 좁은 면적에서 달걀을 낳은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연산오계 암탉은 스트레스을 이지기 못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산오계의 달걀은 품질면에서 양계장 산란닭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삶으면 흰자위 두께가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육질이 치밀하고 단단하다. 그 맛은 여느 달걀 흰자위와는 달리 쫄깃쫄깃하기까지 하다. 자연속에서 얻은 달걀이니 그 가치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제 값을 다 받기도 어렵다. 

고려때부터 이미 보신용이나 약용으로 쓰이기 시작한 연산오계 고기의 품질은 일반 고기용 닭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1992년 아버지가 늘어나는 연산오계의 처리를 위해 운영하기 시작한 전문음식점을 이어받아 경영하는 이 씨는 평균잡아 한 마리에 3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음식점을 통해서 수익이 남겠느냐고 한숨을 쉰다. 연산오계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탓에 팔면 팔수록 적자라는 얘기다.

실제로 연산오계 사육마리수가 2만마리에 달했던 지난 2001년 7월 그는 매달 400마리, 1,000만원에 달하는 연산오계 음식을 팔았다. 그러나 경영성과는 초라했다. 그는 연산오계 음식을 팔아 매달 300만원씩 적자를 메워야 했던 것이다.


 이 씨는 현재 매년 종계 500마리를 확보하기 위한 2,000마리~3,000마리 남짓한 사육마리수를 유지하고 있다. 연산오계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았던 1980년보다 종계를 비롯한 사육 마리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달 평균 판매량은 12년전의 절반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씨의 선친인 래진씨는 논밭을 다 팔았지만 자식들 공부는 커녕, 연산오계 뒷바라지도 힘겨웠던 것이다.

 

연산오계가 천연기념물 지정 받을 당시인 1980년만 해도 인근 지역에는 20여 농가들이 집집마다 수십마리씩 연산오계를 키웠다. 그러나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연산오계 사육을 포기하는 지역 농민들이 늘어갔다. 급기야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씨의 선친인 래진씨만이 홀로 지역에서 연산오계를 길러야 했다.

 

이 씨의 할아버지 계순씨는 일찍이 키우기 까다로운 연산오계를 기르는 농가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 나머지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걱정한 연산오계의 불안한 미래는 현실화 했다.

 

연산오계 없이는 용봉탕도 없다

 

계순씨가 우려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아들이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일궈냈고, 그의 손녀가 지금도 연산오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집안 일을 돌보기 보다 아버지 돈을 탕진하며 바깥으로만 향하던 이씨의 선친 래진씨는 어쩌면 이 씨가 그랬던 것 처럼 연산오계에 지극한 정성을 보이던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겼을런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아들 래진씨는 자식들을 뒤로 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버지의 꿈을 이뤘다. 아버지와 연산오계를 원망했던 이 씨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룬 아버지의 마지막 4년을 함께하며 연산오계 지킴이로서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이 씨가 연산오계에 계모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가업을 잇고 아버지를 되찾아준 연산오계와의 인연때문만은 아니다.

 

이 씨는 지난 2005년 겨울 수차례 걸친 사혈을 거듭하는가 하면, 2011년 여름 백제병원, 국립암센터, 서울대병원을 거치면서 난소와 자궁사이에 자리한 종양에 대한 수십차례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의 종양소동은 자궁근종 진단으로 일단락 됐지만, 이 씨는 누구보다 먹거리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의 소중함을 익히 알고 있는 탓에 그는 우리나라의 유기농 재배를 하는 농가들은 거의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식처럼 아끼는 연산오계를 즐기지는 않는다. 연산오계는 물론 닭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그의 남다른 생각은 연산오계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 생명종의 다양성과 좋은 먹거리, 그리고 환경은 서로 구분지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연산오계 지정농장인 지산농원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우리나라의 첫 한국 ‘맛의 방주’ 등재 음식으로 용봉탕을 내세운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산오계가 사라지면 조선시대 임금이 즐기던 최고의 전통음식은 용봉탕을 구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그에게도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다름아닌 연산오계의 명맥을 이어갈 다음 지킴이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6대째 내려오는 가업이지만 자신의 길을 이어갈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젊은 시절 바쁜 기자생활에 시달리고, 고향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받아 연산오계가 자식인양 정성을 다했던 까닭에 남다른 외모와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혼조차 꿈꾸기 힘들었나 보다.

 

연산오계의 후대 생산에는 온갖 정성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후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이 씨에게서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은 탓에 자식의 월사금조차 내지 못하면서도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등록하는 데 성공한 아버지 래진씨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구라도 연산오계를 진정으로 기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가족이 아니더라도 맡겨야 하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리는 이 씨에게 “혹시 조카가 이 일을 맡고 나서겠다고 하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지자, 그럴 수도 있겠다며 가업을 대물림하는 가냘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마저 상업성 앞세운 ‘개량’, 필요하나?

 

이 씨는 대화의 끄트머리에 예상치 못한 얘기를 했다.

 

그는 "연산종계의 명맥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연산오계의 개량종 보급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연산오계의 개량’은 연산오계만의 특성이 사라지더라도, 잘 크고 기르기 쉬운 서양 닭과의 교배나 유전자 재조합을 거쳐 상업성 높은 보급종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누구보다 연산오계의 고유한 유전자원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그가 이런 고민을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대화를 마치고 지난 20일 지산농원 앞마당에서 열린 제11회 연산오계문화제에 참석한 녹색당원들과 슬로푸드문화원 관계자들을 이끌고 일일이 농장 곳곳을 안내하며 배웅했다.

 

글쓴이는 여느 때와 달라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속에서 더 이상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의 대물림을 위해 특정 가족과 개인에게만 짐지울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연산오계 달걀과 고기세트 상자를 챙겨주며 인사하는 계모 이씨에게 차마 어렵더라도연산오계의 육종이나 개량까지 고민해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연산오계의 대물림은 오계의 어미를 자처한 그 만의 책임이나 고민이 아닌 모든 이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씨앗’의 다양성에서 부터 ‘맛’의 다양함에 이르기 까지 지구촌 사람들에게 농민·농촌·농업에 담긴 가치와 함께, '있던 그대로'의 소중한 자연을 일깨우고 있는 슬로푸드운동은 지난 15년간 소멸하는 생물종을 발굴하고 이를 이용한 맛을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맛의 방주'는 사라져 가는 각 국의 토종 종자, 그리고 이를 이용한 전통음식을 전세계 각 국의 '맛의 방주'위원회가 슬로푸드국제본부와 연대해서 목록화 하는 작업으로 유전자조작(GMO)방식을 거친 생명자원은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맛의 방주 (Ark of Taste) 국가별 현황

국가

Ark of Taste 품목수

국가

Ark of Taste 품목수

Italy

412

Netherlands

7

United States

127

Argentina

7

Spain

62

Sweden

6

France

36

Chile

5

United Kingdom

27

Portugal

5

Japan

22

Australia

4

Brazil

21

Peru

4

Switzerland

16

Cyprus

3

Germany

15

Mexico

3

Austria

15

Bulgaria

3

Canada

10

Russian Federation

3

Norway

9

Greece

3

Iceland

2

Albania

1

Ireland

2

Afghanistan

1

Guatemala

2

Hungary

1

Ethiopia

2

India

1

Croatia

2

Romania

1

Bosnia

2

Mauritania

1

Madagascar

2

Slovakia (Slovak Republic)

1

Malaysia

2

Slovenia

1

Lebanon

2

Finland

1

Poland

2

Egypt

1

Morocco

2

Ecuador

1

Mali

1

Turkey

1

Latvia

1

Armenia

1

New Caledonia

2

Denmark

1

Venezuela

1

53개국 합계

865종


국제슬로푸드본부는 여러 국가위원회와 공동으로 ‘맛의 방주’ 구축을 위해 사라지고 있는 ‘씨’와 ‘맛’을 목록화하고, 국제생물종다양성재단과 연계해 목록화한 ‘씨’와 ‘맛’을 지원하는 공동체지원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를 육성하고 있다. 2012년말 현재 그 숫자만도 50여개국 320개에 달한다.
 

국가별 프레지디아 현황

국가

프레지디아 수

국가

프레지디아 수

Italy

177

Madagascar

2

Switzerland

11

Cyprus

1

France

11

Georgia

1

Brazil

9

Belarus

1

Spain

8

Ecuador

1

United States

6

Egypt

1

Netherlands

6

Dominica Republic

1

Norway

6

Mali

1

United Kingdom

5

Mauritania

1

Chile

5

China

1

Peru

4

Canada

1

Mexico

4

Croatia

1

Argentina

3

New Caledonia

1

Ethiopia

3

Bolivia

1

Germany

3

Cape Verde

1

Bosnia

2

Japan

1

Bulgaria

2

Portugal

1

Morocco

2

Afghanistan

1

Poland

2

Armenia

1

Sweden

2

Ireland

1

Malaysia

2

Austria

1

Lebanon

2

Turkey

1

Guatemala

2

Hungary

1

Romania

2

India

1

국가합계

48개국

전통식품 및 토종종자 목록수

305개


지구촌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사라지는 지원의 생명자원 보존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도 하나 둘씩 사라지는 지구촌의 불안한 ‘생명’은 다름 아닌 인류가 맞이해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문득 근래 비정상적으로 부쩍 늘고 있는 흰색 연산오계를 걱정스하는 이 씨의 불안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친다.

 

지난번 구제역마냥 어느날 갑자기 신종 조류인플루엔자가 급습하거나, 근친교배와 상업성을 내세운 육종으로 인해 연산오계가 아예 사라지거나 원형의 모습을 상실한다면 이 땅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삶은 편안할까?

 

글쓴이가 만난 몇 안되는 우리의 토종은 그 모습이 늠름하고 강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대대로 누려온 자연의 모습을 빼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위적인 것에 너무나 약해 보였다.

그리고 상업성을 앞세운 개량이나 육종, 그리고 유전자 재조합은 ‘생명’에게 ‘자연’이 아닌 ‘자본’을 강요하고 있었다.

 

획일적이고 규격화한 가치의 사슬속에서 다양성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경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구촌 슬로푸드운동이 국제생명종다양성재단과 함께 맛의 다양함과 생명종 다양성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프레지디아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 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나라의 소멸하는 씨와 맛을 되살리고자하는 공동체 프로젝트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스스로 맛의 방주를 구축하고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프레지디아를 이끌지 못한다면 우리를 돕고자하는 이웃 나라 사람들의 도움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마저 힘겨운 대물림을 이어가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이해와 아낌없는 성원이 필요한 때이다.

 

계모 이승숙씨는 지난해 5월 지난 8년간 운영해 온 블로그를 마치면서 어려웠던 시절 블로그가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구였으며 여러 댓글님들이 큰 힘을 주었다고 술회했다.

 

사람들이 한번쯤 시간을 내어 연산오계 홈페이지(http://www.ogye.or.kr)를 둘러보고 우리 토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계모 이씨와 마음을 함께할 때, 연산오계는 특유의 강인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이 땅과 하늘을 영원히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성훈 agrinews.co.kr @에그리뉴스 agrinews.kr 

Posted by ezfar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