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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4 한사군에 갇힌 우리 글

갓 태어난 ‘명나라’를 대국으로 섬기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5만 대군을 위화도에서 되돌린 이성계의 ‘이씨조선’과 함께 본격화한 사대(事大)는 아직도 우리 말과 글에 고스란히 남아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 민족을 가리킬 때 자주 등장하는 ‘한’이라는 우리말은 ‘크다, 중심, 밝은’을 뜻하는 것으로 굳이 한자로 옮기자면 일반적으로 ‘韓’으로 표시합니다. 지나(支那,China)의 ‘漢’과는 구분해서 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자를 지나를 암시하는 나라이름 漢(한)을 사용해 ‘漢字(한자)’라고 쓰고 마치 ‘지나’의 문자를 빌어 쓰는 것인양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지나(支那,China)는 한자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지나(支那,China)는 오래전부터 한자를 자신의 것 인양,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와 세계 언어학계는 한자를 지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치 않았습니다.

‘지나’의 국민감독이라 불리는 장예모 감독은 2008년 뻬이징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한자를 소재로 한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상당수의 한자들이 우리 민족의 문화,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집 ‘가(家)’자입니다. ‘집’을 뜻하는 ‘면(宀)’자 아래에 돼지 ‘豕(시)’자가 자리해 있습니다. 사람과 소, 돼지가 한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문화를 지닌 민족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집안에 ‘소 우리’가 달려 있는 시골 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나’에는 이런 문화가 없습니다.

‘아리수’라 불러 온 ‘민족의 젖줄’ 한강 역시 ‘지나의 강’인양, 漢江이라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을 살펴보면 우리의 강인 한강을 왜 우리 민족의 이름인 韓을 붙여 韓江이라 쓰지 않고 지나의 이름인 漢을 내세워 漢江으로 쓰고 있느냐는 질문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네이버에 게시된 이 질문에 대한 답 글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하나는 고려말 이조년의 시조에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라는 구절이 있는데, ‘시간이 흘러 은하수가 기울어 3경(한밤중)이 되었다는 뜻’이라면서 漢江의 漢은 지나의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은하수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조년의 시조가 한강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이조년은 한강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간이 흘러감을 묘사했을 뿐인데, 이를 두고 ‘은하수’라는 뜻을 담아 漢江이라 썼다고 하니, 왠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또 다른 답변은 漢江은 漢水에서 유래된 말로 원래 漢水라고 불리던 강은 우리 민족이 왕성하게 활동했던 대륙, 즉 지금의 지나 땅에 자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한반도로 축소하면서 대륙에 있던 강 이름을 한반도 안으로 그대로 옮겨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도 무리가 있는 듯 합니다. 우선 우리 민족이 대륙에서 활동할 당시 큰 강을 기준으로 근거지로 삼았다면, 그 강의 명칭은 지나를 뜻하는 漢水가 아니라, 당연히 한민족을 상징하는 韓水였어야 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설령 우리 민족의 활동 근거지였던 대륙에 위치한 큰 강의 이름이 漢水였다고 하더라도, 굳이 지리적으로 편차가 있는 한반도내 강 이름을 漢水로 이름 짓는 것이 타당하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漢水라는 이름은 우리 민족이 지은 이름이 맞을까요?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일제는 '고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로 축소시키려 조작을 서슴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제는 한나라가 짧게나마 고조선을 누르고 설치한 한사군을 과장해서 식민통치의 명분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대륙의 역사를 지우고자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를 한반도로 축소하기 위해 날조와 왜곡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일제는 과연 지나인의 이름을 빌어, 우리 민족이 중원과 겨루며 왕성한 활약을 벌였던 요서 또는 요동에 위치한 강을 오늘날 한강(漢江)으로 끌어내려 탈바꿈 시켰을까요?

실제로 한사군을 둘러싼 일제의 역사조작이 우리 역사학계에 의해 덜미를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손보기 전 연세대 교수는 1990년 일제에 의해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의 위치가 요서에서 평안남도로 이동한 근거를 제기했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낙랑군의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진 '점제현신사비'가 바로 그 것입니다. 손 교수에 따르면 당초 요서지역에 위치했던 갈석산에는 신사비 크기의 바위를 쪼아낸 자국이 있으며, 신사비의 돌을 조금 떼어내 갈석산의 돌과 맞춰본 결과 정확하게 일치했습니다. 반면 평남지방에서는 신사비에 쓰인 암석의 재질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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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군 점제현신사비의 이동 경로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과의 전쟁으로 얻은 한사군은 저마다 다른 변천과정을 거치며 3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낙랑군만 남긴채 모두 소멸합니다. 낙랑군 또한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복속됩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역사학계는 ‘낙랑군 평양설'은 날조된 것이며, 낙랑군 또한 낙랑국으로서 고조선 유민들이 건설한 나라’라는 연구결과를 속속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나의 이름을 빌린 한강(漢江), 한수(漢水)란 이름은 서울의 옛 이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는 ‘서울’의 옛말인 한양 또한 지나(支那,CHINA)를 상징하는 글자인 한(漢)을 갖다 붙여 한양(漢陽)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양(漢陽)이란 말은 한수(漢水)이북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강의 북쪽에 위치한 땅에는 양(陽), 강의 남쪽에 위치한 땅에는 음(陰)이라 한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음양의 철학은 지나의 주역, 즉 음(陰)과 양(陽) ‘이태극’으로 대변되는 것입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음와 양으로 나눠 해석하고 이름 붙이는 것은 우리의 하늘(天) 자연(地) 사람(人)의 조화를 뜻하는 ‘삼태극’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지나쪽에 가까워 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강을 漢水, 漢江으로 쓰면서, 서울의 옛 명칭 또한 지나의 이름인 ‘漢’을 자연스레 붙이게 됐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지나의 ‘동북공정’에 비춰볼 때,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한양(漢陽)’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점을 들어 ‘서울은 본래 지나의 땅이었다’는 엉뚱한 해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고구려(가우리)역사 훔치기'에 혈안이 돼 있는 ‘지나’를 두고, 우리는 中國이라 높이며 받들고 있습니다. 中國은 ‘중심의 나라’란 뜻을 담고 있는 우리 민족의 이름 ‘가우리’의 한자어입니다. 말하자면 ‘고구려’의 뜻을 새긴 한자이름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변두리를 뜻하는 ‘支那’를 ‘中國’이라 부르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일본은 지나(CHINA)를 ‘支那’라고 쓰고, 부릅니다.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 하여 ‘가우리’(KOREA의 원형)라 말했고, 지구촌 사람들 또한 ‘가우리’를 ‘코리아(KOREA)’, ‘지나’를 ‘차이나(CHINA)’라 불러 왔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우리가 ‘지나’를 中國이라 부르는 것은 선조의 이름을 헌납하고 스스로‘변두리’라 여기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지나’가 스스로 ‘중심의 나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100여년전 ‘지나’는 한일합방때, 우리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우리 선조의 이름을 슬쩍 베껴 온 것입니다.

좋은 것을 베껴 온 다음, 시간이 흐른 뒤 자기 것으로 만드는 지나인들의 독특한 성향은 과거 서북(티벳)공정이나, 지금의 동북공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지나(CHINA)'의 의미를 담은 나라이름 '漢'의 사용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漢字', ‘漢文’이라고 쓰기 보다는, ‘한겨레’를 의미하는 ‘韓(한)’을 덧붙여, ‘韓字(한자)’, ‘韓文(한문)’이라고 써야 합니다. 과거 ‘漢醫’라고 쓰던 것을 ‘韓醫(한의)’로 바로 잡은 것처럼, ‘漢江’은 ‘韓江(한강)’, ‘漢陽’은 ‘韓陽(한양)’으로 고쳐 써야 합니다.

어찌 한강이 ‘지나의 강’이며, 서울이 ‘지나의 밝은 땅’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강은 한겨레의 강이며, 서울은 한겨레의 밝은 땅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 즉 中國은 변두리 ‘지나(CHINA)’가 아니라 가우리 ‘코리아(KOREA)’임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가우리(고구려)’의 역사가 자기 것이라는 지나의 동북공정에 반박하기에 앞서, 우리 속에 남아 일제강점기를 거쳐 수천년간 끊이지 않고 있는 ‘지나’의 흔적, 한사군(漢四郡)의 찌꺼기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일제는 한사군 설치를 나타낸 비석마저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 올 만큼 주도 면밀하게 우리 역사를 한반도로 축소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대륙에 위치한 漢四郡과 우리 민족의 주요무대에 자리했던 漢水를 ‘아리수’와 ‘욱리하’로 불리던 지금의 한강으로 끌어내려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덧붙여 대륙에 위치한 漢水라는 강의 이름 또한 漢四郡설치이전, 즉 우리 민족이 점유하고 있었을 때에도 과연 漢이란 글자를 사용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정히 한강을 韓江이라 부르기 어렵다면 차라리 ‘아리수’로 부르는 게 나을 듯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한양’이라는 이름도 자연스레 퇴색하지 않을런지요?

오래전 지나의 역사학자가 김포공항에서 서울시내로 들어오는 길 옆으로 흐르는 한강을 보면서, "오~ 한지앙" "한지앙"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자신들의 땅을 되찾은 듯한 유쾌하지 못했던 미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말과 글은 사람들이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사물과 생명체, 그리고 사람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붙인 이름으로 인해 훗날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가우리’ 고구려 역사의 편입을 시도하고 있는 지나가 훗날 '가우리'의 후손이라는 우리나라가 그들을 가리켜 ‘가우리’ 고구려의 뜻을 새긴 한자어 ‘中國’이라 스스로 부르고 인정했다는 점을 들어 이상한 역사를 정당화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괜한 근심’이라 흘리고 싶지만, 과거에 고구려가 그들의 역사라는 오늘날 ‘동북공정’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습니까?

적어도 ‘밝은’ ‘중심’ ‘큰’ 이란 삼태극의 이념을 담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한(韓)’과 관련한 말과 글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한글로 쓰인다고 할지라고 우리 민족을 뜻하는 ‘한(韓)’과 지나를 뜻하는 ‘한(漢)’은 엄연히 구분돼 사용됐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며, 역사를 기록하는 말과 글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말과 글로 정체성을 확인하는 언론이 나서서 그동안 잘 못 방치돼 온 우리 말과 글, 이름을 한번쯤 가다듬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보도성향을 떠나서 사려 깊은 말과 글의 표현은 언론의 뿌리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옛 이름이 漢陽이랍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지나(CHINA)의 밝은 땅’입니다. 아무리 의미를 덧붙여 본들, 그것이 우리 이름이 아니라는 느낌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듯 합니다. 

Copyleft NewsKing 2011.01.23. newski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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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zfar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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