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선 슬로푸드축제 안 된다고?

 

"서울시, 이번엔 ‘슬로푸드 축제’ 놓고 충돌...燈축제 싸고 진주시와 갈등하더니“

“서울시 vs 지자체 축제갈등, 이번엔 '슬로푸드'? 내년 3∼4월 슬로푸드 축제 개최...경기 남양주 등 타 지자체 축제와 겹쳐 반발 예상”

 

얼마전 언론에 보도된 기사 제목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축제가 마치 지자체의 전용 상품이라고 되는 양 그릇된 가치를 지니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한다.

 

슬로푸드는 음식을 매개로 한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운동이다. 그리고 음식의 뿌리인 농민 농촌 농업, 그것도 옛 방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소농 사회에 뿌리를 둔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사람과 지구를 살리는 ‘미래’라고 말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이 소농을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 활성화가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라고 말하는 이유는 수명이 50년도 채 남지 않은 화석연료를 발판삼은 인간의 자본과 과학의 오만함이 고전의 진리와 생태계의 영원함을 기만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사람들의 탐욕이 빚은 식량의 독과점과 기아 증가, 그리고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출처 불명의 공장식 음식의 생산이 생명다양성을 위협하고있다고 말한다. 특히 돈이 만든 허구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역, 즉 인류가 얹혀서 살아가야 하는 생태계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전세계 슬로푸드 네트워크는 토종 종자와 음식을 복원하는 맛의 방주, 그리고 토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농부와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 함께하는 ‘프레지디아’,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한 농부시장(어스마켓), 패스트푸드에만 집착하는 광고미디어에 대응하기 위한 음식교육 등을 지역공동체인 컨비비움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슬로푸드가 말하는 축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질주의가 모든 가치를 왜곡하는 와중에서도 참된 가치를 지니고 소박한 미래를 꿈꾸는 소수의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보태기 위한 일종의 연회다. 
이것은 사람들이 축제하면 떠올리는 엑스포나 난잡한 먹거리를 맛보고 구입할 수 있는 전시 이벤트 행사와는 다르다.
 

 

슬로푸드가 말하는 축제는 소농과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확신, 그리고 선조로 부터 물려 받은 지역 전통 음식과 문화의 공유, 인간성을 주눅들게 하는 물질 자본주의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 그것은 비록 적은 이들이나마 이런 가치를 함께 공유하며 그것이 나만이 고민하는 외롭고 소외된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연대의 우정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보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면 슬로푸드 축제는 떠들썩한 놀이마당이나 이벤트 전시행사라기 보다 우리의 공공기반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고 연대의 뜻을 나누는 촛불집회에 더 가깝다.
 




슬로푸드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농촌에 돌아갈 것을 진지하게 말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사람들이 도심에서 생명을 기르는 도시농업을 영위하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질좋은 식재료는 그 땅의 농부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음식교육을 통해서 강조한다.

 

슬로푸드 운동이 도시에 대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다름 아닌 소비자가 공동생산자로서 농업에 대한 이해를 넓힐 때 우리의 사회는 참으로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때문에 슬로푸드 음식교육의 핵심은 언제나 농부를 이해하는 도시사람들, 즉 농부와 영혼을 함께하는 공동생산자를 배출하는 일이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사람들의 촛불집회가 해당 지자체의 고유한 영역이 될 수 없다. 이렇듯 슬로푸드 축제는 농부와 지역을 사랑하고, 자연 그대로 주어진 생태계속에서 사람에게 적합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소비자들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야말로 슬로푸드 축제가 꼭 필요한 곳이다.

 

지역경제 선순환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로컬푸드의 본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거리에만 매몰된 로컬푸드는 엉뚱하게도 대형마트의 마케팅 도구로 자리하고 있다. 대형마트속에 자리한 로컬푸드 판매코너는 본말이 전도된 우리 사회의 가볍고 천박한 단면을 드러내 보인다.

 

지자체들은 슬로푸드 축제를 말하면서도 지역의 토종을 가꾸고 도시와 농부들의 연대를 모색하는 데에는 정작 인색하다.

 

슬로푸드 코리아는 어느 지역만을 위한 이벤트 회사가 아니다. 사라져가는 토종과 전통지식을 되살리기 위한 절박하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난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자체장들이 진정 슬로푸드를 위한다면 고전의 삶을 소생시키기 위한 연대의 뜻을 담아 서로 슬로푸드 축제를 권장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이들은 지역공동체와 소농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참여민주주의 실현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 생태계 복원과 토종 자원의 지속성을 위해 지역 농부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지역’의 미래를 살펴야 한다.

 

더 이상 어슬픈 언론이 슬로푸드 축제가 누구 것이냐를 따지고 지역간 분쟁을 조장하며 슬로푸드 운동의 확산을 가로막는 파렴치한 기사를 마구 써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인간이 만든 대멸종의 시대를 맞아 우리 토종이 처한 위험을 알리고 홀로 고전분투하는 농부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다. 우리나라 언론인들이 ‘고전의 삶’으로의 회귀해야 할 이유를 많은 이들에게 일깨우는 영혼이 담긴 보도를 실천에 옮겼으면 한다. 언론인들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 슬로푸드를 세상에 처음 선보인 카를로 페트리니 역시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슬로푸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온 인류가 각 자에게 주어진 고유한 생태계를 되살리며, 지속 가능한 생명을 이어가는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이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다. 어느 지역은 하고, 어느 지역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외로움과 고립을 벗어던지고 서로의 진정을 확인하는 연대와 협력, 그리고 배려를 함께 나누는 장을 어느 지역에 한정지으려는 설익은 편견은 슬로푸드가 꿈꾸는 세상, 어디에도 자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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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일보 인용) 서울시, 이번엔 ‘슬로푸드 축제’ 놓고 충돌
燈축제 싸고 진주시와 갈등하더니…
 
朴시장, 사업추진 지시
 

서울시가 이미 지역 중소 도시들이 개최하고 있는 ‘슬로푸드(slow food)’ 축제를 준비하고 있어 경남 진주시와 갈등을 빚은 ‘등(燈)축제에 이어 또 다시 중소 도시와 충돌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2월 2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11월 10일 식품계 전문가들과 함께 ‘2014 슬로푸드 축제 추진 관련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고, 내년 3, 4월 개최가 목표인 슬로푸드 축제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논의했다.

 

박원순 시장은 최근 슬로푸드 축제 개최 방안과 함께 이를 ‘먹거리를 통한 시민 건강 증진’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관련 부서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시는 슬로푸드 축제를 통해 먹거리 정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시가 추진하는 슬로푸드 축제는 이미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유사한 이름과 내용으로 열리고 있어 축제 모방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의 슬로푸드 축제 추진에 대해 타 지자체는 불편한 기색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남양주시는 국제대회 성격이 짙다”며 “중복될 가능성이 있는지 신중하게 (추진상황을)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 (머니투데이 인용) 서울시 vs 지자체 축제갈등, 이번엔 '슬로푸드'?
내년 3∼4월 슬로푸드 축제 개최...경기 남양주 등 타 지자체 축제와 겹쳐 반발 예상
'
 

유등축제' 베끼기 논란으로 경남 진주시와 갈등을 빚었던 서울시가 이번에는 '슬로푸드 축제'를 계획하고 있어 다른 지방자치단체들과 충돌이 예상된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반대되는 말로 느린 삶을 의미하며 그 시작을 식탁에서부터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11월 30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내년 3월말∼4월초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 시민청에서 '2014 슬로푸드 축제'를 열기로 하고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 축제는 △시대·테마별 서울 음식 소개 △일본, 대만, 중국 등 세계 음식 초대 △음식과 관련된 영화 상영 △궁중음악 등 음악과 함께하는 음식 등의 테마로 구성될 예정이다. 외국학자들이 참여하는 전통음식(한식) 심포지움과 '서울 한식 선언' 등의 행사도 준비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계획대로 슬로푸드 축제를 개최하면 같은 행사를 진행해온 다른 지자체와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슬로시티로 지정받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다양한 슬로푸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남 완도청산 슬로걷기 축제 △경남 하동 야생화 문화축제 △전남 창평 전통음식 축제 △경북 상주 함창명주페스티벌 △경북 청송 사과축제 △강원 영월 김삿갓 포도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1일부터 6일까지 남양주 체육문화센터에서 열린 아시오 구스토는 아시아·오세아니아 44개국이 참가, 국제·국내·주제관 등에서 1000가지 음식을 선보인 바 있다. 행사 기간 동안 53만여 명이 방문하고 경제 파급 효과도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남양주시 측은 분석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다른 지자체와 같이 슬로푸드를 주제로 축제를 진행하는 것은 반대한다"면서 "슬로푸드에 한정하기보다는 '한식'이라는 주제를 더 심도있게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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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부터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 대해 기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래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일정 부분 편집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월간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 특집 기사와 함께 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편집됐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글쓴이의 뜻을 충분히 고려한 편집자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이 원고 덕분에 저는 유기농 현미쌀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원고에 대한 특별한 대가였습니다. 책에 실린 원고를 구할 길이 없어 제가 보낸 원고를 그대로 싣습니다. <편집자주>

 

자연을 닮은 작고 다양한,

토종의 방주가 생명의 세상을 살린다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부와 웰빙을 사람들이 나누며 지속 가능한 사회협동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생산,가공,유통 등 전지구적으로 식량을 독과점화하고 있는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의 획일화한 먹거리 공급과 마케팅 구조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슬로푸드운동은 이윤에 집착하는 현대의 물질 중심의 가치에 맞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고전의 가치를 내세운다.

 

슬로푸드운동은 이를 위한 대안으로 소농을 중심으로 한 지역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서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 까지 다국적기업의 독과점에 맞서는 체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network)를 추진한다.

 

올해 한국에서 처음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는 고전의 가치를 전승하기 위한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이런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슬로푸드운동은 다국적 식품 기업들의 독과점화를 미화하는 주입식 광고미디어에 대응하기 위해 농식품 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한 음식 교육을 실시해서 소비자들을 공동생산자(coproducer)로 육성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모든 사람들은 연령이나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다양한 지식들이 한데 섞여서 조화를 이룰때 좋은 대안을 만들고 교육(education)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물의 특성과 역할 그리고 생산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단순한 먹거리 요리 교육은 필요없다고 이야기한다.

 

맛의 방주(Ark of Taste)는 단순히 소멸 위기에 놓인 종자나 음식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공동체(convivium)의 밑천인 토종의 종자와 음식을 되살려 지역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선순환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전략이다.

 

슬로푸드운동은 맛의 방주 등재에 그치지 않고 맛의 방주 등재품목을 지역의 생산자, 가공업자, 유통인, 소비자, 교육·문화단체 등이 함께 가꾸는 토종살리기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presidia)를 육성한다. 그리고 지역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지역 사회와 경제를 살찌우는 로컬푸드 농부장터인 어스마켓(earth market)’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도시 사람들이 농업 지식을 공유하고, 소농을 양성하기 위한 도시농업 보급 차원에서 슬로가든(Slow garden)’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슬로시티역시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런 활동의 목적은 토종 먹거리 자원을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 해서 사람들이 부와 웰빙을 나누고자 함이다. 이로써 인류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가 달성될 것이라고 여긴다.

 

슬로푸드라는 낱말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자본의 그늘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의 오랜 지식과 경험을 일깨워 사람과 생명, 그리고 지구가 조화를 이뤄서 살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농부들과 요리사들의 노고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기를 권유한다.

 

맛의 방주는 사람들의 일상속에서 가장 친근하게 자리하고 있는 음식을 매개로 해서 선조로부터 대대로 이어받은 고전의 지식(人性)을 실천해 나가는 열쇠이자 첫 단추이다. 사람들은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나고 삶을 영위한다. 따라서 아버지, 할아버지가 살아 온 지역의 다양한 생명 그리고 먹거리는 다음 세대의 건강한 삶과 유전자(DNA)를 결정하는 변수로 자리한다.

 

먹거리의 원천인 토종 생명자원들은 오랜 기간 지역의 자연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며 그 지역 사람들에게 최적의 식재료를 제공해 왔다. 사람들은 지역의 다양한 생명을 기르고 맛과 요리를 대물림 하며 경제활동의 밑천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토종은 지역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밑천이자 원천이었던 셈이다.

 

토종은 그 지역에서 오랜기간 자연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생명의지를 담고 있다. 토종의 생명들은 이윤을 쫓는 자본의 산업사회를 거부한다.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고 공유해 온 토종은 자본과 기계를 기반으로 한 대량의 단작 방식의 기업농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산업사회는 생산성을 문제삼아 토종을 퇴출하기에 이르렀고, 자본가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농업의 단순화, 단종화, 대규모화는 결국 몇가지 품종이 전세계 먹거리를 좌우하는 기형적인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를 낳았다. 패스트푸드로 사람들을 현혹한 자본은 노동을 단순화하고 비용을 줄이는데 급급했다. 식품기업들은 생산지역, 품종, 생산자에 따른 다양한 맛은 출처를 알 길이 없는 획일화한 조미료, 그리고 그럴싸한 브랜드로 대체했다.

 

패스트푸드를 앞세운 식량의 독과점화는 식량 공급의 불균형을 낳았다. 인류가 먹기에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지만 40%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굶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전통 농업의 원천인 토종이 밀려나니 소농이 퇴출되고, 지역공동체는 무너져 갔다


반면 도시는 비대해지며 실업, 범죄, 환경 등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화석연료 자원을 고갈과 대멸종, 경기침체와 중산층 붕괴, 식량위기와 환경오염과 같은 산업사회의 풀기 힘든 숙제는 소농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삶의 회귀를 대안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런 이유에서 슬로푸드운동이 토종을 앞세우고 지구촌 어느 시민사회운동단체보다 물질이 생명을 왜곡하는 패스트푸드, 그리고 유전자조작농산물(GMO)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토종자원의 보존을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슬로푸드운동이 로컬푸드(local food), 공정한 음식(fair food), 먹을 권리(The Right to food) 집착하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슬로푸드운동은 오랜시간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온 생물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뿌리를 다시금 생각하고, 어렵사리 이를 지키고 가꾸어 가는 농부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해 하고 그들을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람이 소중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맛의 방주는 이런 소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담고 있다.


앞으로 50년간 지구촌은 엄청난 변화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이 아닌 인간이 초래한 이상기후, 대멸종의 시대가 그 사례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자본의 물질문명과 과학을 뒷받침해 온 화석연료 자원의 고갈에서 비롯할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슬로푸드를 넘어설 수 없다. 그것은 석유자원을 한없이 베풀지 못하는 자연이 만든 규칙이고 질서다. 화석연료의 고갈은 사람의 물리적 이동거리를 제한 할 것이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기계문명은 심각한 변화를 맞을 것이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로컬푸드가 활성화할 것이다. 도시를 지탱해 온 자원의 이동거리 축소는 도시로 부터의 이탈을 초래할 것이다. 자본이 농부에게 단순한 노동을 강요하는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가장 절박한 숙제는 돈보다는 먹거리가 될 것이다. 스스로 먹거리를 챙기는 소농의 지역공동체 사회가 도래하는 할 것이라는 선각자들의 예언은 그리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초한 대멸종 사태를 맞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생명다양성(Biodiversity)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까닭은 인류는 자연의 생태계에 얹혀 살아가야 하지만 생태계는 사람이 없어도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소농의 원천이자 지역의 밑천인 토종을 일깨우는 맛의 방주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이다. 그리고 맛의 방주를 지원하는 공동의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는 지속 가능한 토종을 위한 참여의 장이다.

 

올들어 제주 흑우 전남 장흥 돈차(청태전) 자염(충남 태안 등) 제주 푸른콩장 경남 진주 앉은뱅이밀 충남 논산 연산오계 칡소 (경북 울릉 등) 경북 울릉 섬말나리 등 8개 품목이 슬로푸드 국제본부 생명다양성재단이 운영하는 맛의 방주에 이름을 올렸다.

 

그 속에는 대를 이은 토종지킴이들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끊이지 않는 희망이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지역 문화원, 미식 교육가, 학자, 농가맛집, 교육농장, 전통 누룩과 막걸리제조업체, 화장품기업에 이르기까지 토종도우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작은 씨앗 하나가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지난 20여년간 농민 농촌 농업의 주변인으로 빌붙어 살아 온 글쓴이는 토종이 전하는 깊이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우리 먹거리를 온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땅이 비좁다고 남의 생명창고를 마냥 빌려 쓸 수 없다. 땅이 좁으면 좁은대로 산이 높으면 높은 대로 그 나름대로 농업은 우리 주변에 오랜기간 자리해 왔다. 우리의 생명은 늘 가까이에 있는 다른 생명들과 조화를 이뤄 이어져 왔다.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바다건너 땅에서 자란 먹거리가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앞마당에서 자란 고유의 작은 생명보다 우리 몸에 더 나을리 없다. 우리의 자연을 닮은 좁은 땅에서 적지만 다양한 고유의 생명을 가꾸는 작고 많은 농부들이 한국의 DNA에 맞는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의 토종, 그 속엔 우리 뿌리와 미래가 담겨 있었다.

 

* 20131025일 녹색연합 발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보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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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구의 날(Earth Day)이다. 자연환경 보호의 기념일로 요약할 수 있는 지구의 날은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2000만 명의 자연보호론자들이 모여 최초의 대규모적 자연보호 캠페인을 전개하고 시위한 날을 기념해서 제정되었다고 한다.

 

네이버가 홈페이지 첫화면 최상단에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시키며 지구의 날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은 대형식품기업을 낳았고 화학조미료가 버무려진 획일적인 맛을 강요하고 있다. 먹거리의 출처 따위엔 관심이 없다. 이러다 보니 생물종 다양성과 같은 전지구적인 문제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렇게 생산되는 하나의 맛은 단일품종의 대량생산과 유전자조작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자본의 이익을 앞세워 대량의 농식품을 취급하는 대형유통업체들은 규격화하고 획일화한 이런 농식품의 취급을 선호한다. 원산지를 위반하는 일은 납품업체의 잘못이지 더 이상 그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파는 음식에 대해선 책임을 질 수 없는 구조다. 어쩌면 그들은 맛과 농수산물의 다양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이러다 보니 외국산 농수산물을 헐 값에 들여와서 마진을 챙기는 일에 능하다. 국산 농수산물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대형마트에 주로 납품하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단체들에게선 친환경 재배를 포기하는 회원 농가들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해봐야 이득은 커녕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이런 친환경농산물을 헐 값에서 사서 매우 비싸게 판다. 그들에겐 친환경농산물은 이벤트 상품에 불과하고 마진이 좋은 다른 농수산물의 판매를 상대적으로 늘리기 위한 미끼일 따름이다.

농협중앙회 안심한우는 아직도 대형마트에 농협한우를 제대로 납품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납품업체를 통해서만 팔 수 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농협 또한 재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있다.

 

물신의 하수인이 지구의 지식인에 대한 주제넘은 지배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대형마트의 신선농식품 매출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점포 입점으로 인해 그들의 경영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심지어 대형마트가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진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면 직거래를 비롯한 농민 소비자들의 대안유통 채널이 호응을 얻고 있다. 지구의 환경과 동식물의 다양함을 생각하는 지구의 날만큼은 우리가 무엇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할지 생각해 볼이다.

 

지구의 날을 맞아 네이버가 선보인 이색적인 서비스는 보기에 무척 좋았다. 그런데 네이버의 '지구의 날' 홍보이미지 아래에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인 롯데리아 햄버그 이벤트 배너광고가 자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색한 일이다. 네이버에게 이런 요구까지하는 것은 지나친 기대가 낳은 무리일까?


김성훈 newsking@agrinews.co.kr @에그리뉴스 agr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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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운동은 반(反)패스트푸드 운동이라기 보다는 반자본, 반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사회 공동체 운동이다.

 

슬로푸드운동은 대형 자본에 의해 생산 유통되는 획일화한 식품 공급체계가 궁극적으로 인류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획일적인 식품공급은 식재료의 품질이나 원산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형 식품기업이 생산한 공산품화한 식품은 식재료인 신선 농수축산물이 어디에서, 어느 농민이, 어떤 씨앗을 심어서,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관심이 없다. 인공 조미료를 덧씌워 똑같은 맛의 식품을 공급할 따름이다.

 

결국 식품대기업은 제한된 먹거리의 대량생산에 몰두하게 되고 이를 유통시킬 수 있는 대형유통업체와 광고마케팅에 중점을 두게 된다. 이로 인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식품기업, 유통기업, 매스컴의 카르텔이 형성된다.

 

오늘날 다국적 금융자본이 만들어 낸 곡물메이저, 기업축산,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대형할인점, 대규모 식품기업, 거대 언론의 등장은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반면 슬로푸드운동은 생물종 다양성, 맛의 다양함을 내세운다. 그 이유는 식품의 규격화는 결국 농산물 생산의 단종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형 농업과 공장식 축산업을 부추기며 수많은 일자리를 뺏고 가족농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대량생산을 위한 맛의 균일화가 낳은 생물종의 단종화에 따른 대량생산 유통 방식은 식량공급의 편중성을 심화시켜 전세계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릴만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음에도 굶어죽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는 기현상을 낳고 있으며, 지역 경제와 공동체 를 파괴하고 있다.

 

생명종 다양성을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실제로 사회경제 공동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앉은뱅이 밀을 경남 진주의 농민들이 모여 되살리기 시작했다.

 

소멸위기에 놓은 앉은뱅이 밀이 지역 농민들의 협력으로 되살아 나면서 여러가지 일자리가 만들어 지고 있다.

 

앉은뱅이 밀을 가공하는 기업, 그리고 앉은뱅이 밀을 원료로 사용하는 음식점, 빵집이 늘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씨앗 하나를 되살렸을 뿐인데 적잖은 지역 일자리가 창출되고 경제가 활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이는 소멸위기에 놓은 '씨', 그리고 그것을 소재로 한 전통음식을 되살리면 그만큼 지역경제와 사회공동체는 큰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생물종이 되살아 나서 지역경제와 공동체가 활기를 띤다는 얘기는 곧 생물종이 사라지는 것 만큼 우리의 삶이 지속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을 뜻한다.

 

슬로푸드운동은 그래서 씨와 맛의 다양성을 유난히 강조하고 자본에 의한 획일적인 먹거리의 대량 생산과 유통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리고 자본의 이익을 앞세운 인간의 과학, 구체적으로 생명공학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테면 거대자본이 보다 많은 이익을 누리기 위해 줄기세포로 쇠고기를 생산하는 생명공학기술 개발에 투자해서 성공했다고 치자. 이럴 경우 곡물 생산자, 사료가공업체, 식육기술자, 등급판정사, 가축개량전문가, 축산기술 개발자, 도축업자, 가축위생(방역) 및 수의 전문가. 축산농민, 축산물 운반 및 물류기업, 축산기계 기업, 육가공업체 등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지역경제는 물론 서로 연관을 맺고 함께 해 온 경제공동체가 무너진다.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생명공학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을 비롯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슬로푸드운동이 반자본, 반신자유주의 운동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본이 생존을 위해 더 이익을 누리려 팽창화하는 과정에서 생명종의 단종화, 그리고 맛의 획일화를 도모하며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생명'마저도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슬로푸드운동은 으뜸의 가치인 생명마저 왜곡하는 자본이 개인 삶을 파괴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궁국에는 인류를 파국으로 이끌 것이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유기농 운동이 생산윤리 측면에서 자연을 닮은 먹거리 공급을 지향하고, 로컬푸드운동이 농민·소비자의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는 식품소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면, 슬로푸드운동은 ‘씨’와 ‘맛’에 담긴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삶의 철학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지역속에서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추구하는 슬로푸드운동이 주목하는 것은 '씨'와 '맛'의 다양성, 그리고 교육이다.

 

슬로푸드운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져 버릴 자본의 독과점 사회가 아닌, 지속 가능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회를 위한 대안이다.

김성훈 newsking@agrinews.co.kr @ 에그리뉴스 agrinews.kr


카를로 페트리니는 고향인 이탈리아 브라(Bra) 지방 근처에 세계 최초의 '미각대학'을 설립하였다. 정부가 관리를 하지만 전체 운영방향과 기획은 카를로 페트리니가 주도하고 있다. 단순한 미각을 살리는 교육을 넘어 인간과 과학, 살림과 나눔의 철학이 녹여낸 교육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슬로푸드 운동 국제본부 회장 카를로 페트리니(58·Carlo Petrini)가 세계가 처한 금융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느리게 사는 삶'이 대안이라며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소비 신봉의 무한경쟁체제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언급했다.

 

공존공생이 아니라 함께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빠진 지금 '느림의 철학'과 '자발적 가난'의 정신을 나눌 때가 아닌지, 지난 과거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볼 때다.

 

달팽이로고로 상징되는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1986년 패스트푸드의 상징인 맥도널드 매장이 이탈리아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카를로 페트리니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저항으로 슬로푸드운동을 전개했다. 음식문화가 표준화, 획일화함으로써 공동체의 근간이 파괴 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이제 세계 132개국에 걸쳐 85,000명의 회원들과 50여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는 국제적인 단체로 성장했다.

 

○ 슬로푸드가 세계금융위기를 돌파한다? 중에서...

▶ http://me2.do/xZvo69WY

 

 
○ 슬로푸드운동 참여하기

▶ http://www.slowfoodkorea.kr/hp/bbs/register.php

Posted by ezfarm.kr

우리나라의 유일한 가금류 천연기념물인 연산오계는 자녀 학비조차 감당하지 못하면서, 적잖은 가산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던 태조 이성계 후손의 애닯고 끈끈한 가족사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왔던 다양한 생명과 음식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지난 375년동안 6대에 걸쳐 그랬듯이 연산오계의 지속 가능한 삶을 더 이상 어느 가족, 아비와 자녀가 대물림하고 떠맡게 해선 안된다.

천연기념물의 지속 가능한 삶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지키고 가꿔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맞춰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슬로푸드운둥은 한국 맛의 방주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생명의 다양함이 곧 건강한 맛의 다양성이란 평범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려 하고 있다.

 

지금 지구촌 60여개국에선 900여개의 향토음식과 토종종자를 담은 맛의 방주,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320여개의 프레지디아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제 슬로푸드본부 역시 전세계 맛과 생명종 다양성을 위한 공동체 지원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토종종자와 전통음식의 목록화, 그리고 프레지디아의 구성과 운영까지 국제사회가 지원할 수 없다.

 

생명종 다양성과 맛의 다양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늘어나고 자발적으로 소멸위기에 놓인 토종종자, 그리고 이를 이용한 전통음식의 발굴과 복원을 위한 공동체가 꾸려질 때 비로소 국제사회와 함께 우리 모두를 위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10월 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국제대회(Asio Gusto)를 앞두고 소멸위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토종 종자와 향토음식을 발굴・복원하고 지속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한국 ‘맛의 방주(Ark of Taste)’프로젝트가 본격화하고 있다. <에그리뉴스>는 이에 따라 ‘한국의 토종을 찾아서’ 기획연재를 통해서 우리나라 고유의 맛과 생물을 찾아보고 맛과 생물종 다양성의 중요성을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국의 토종을 찾아서(2) 충남 논산 지산농장 ‘연산 화악리 연산오계’

 

지난 20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길 70번지, 천연기념물 265호 국가지정 사육장인 지산농장에선 이채로운 행사가 벌어졌다. 다름아닌 지난 2003년부터 해마다 열린 연산오계문화제다.

 

연산오계문화제는 애초 명칭이 오유공 위령제였던 것 만큼 올해 또한 제 명을 다한 연산오계의 넋을 위로 하는 의식을 치렀다.

 

연산오계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제를 지낸다고 하니 적잖은 이들이 색다르게 받아들일 법도 하지만 벌써 11년째 해마다 이어지고 있는 의식이다.

 그도 그럴것이 연산오계문화제를 매년 열고 있는 지산농장 대표 이승숙씨의 가족사는 연산오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남다른 인연을 지니고 있다.

 


375년 6대가 오계와 함께 대물림한 아비와 자식의 약속

 

이씨 집안과 연산오계의 필연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아들인 익안대군 방의씨의 아들인 학산공 오륜씨가 연산면 화악리에 정착하면서 비롯한다.

 

오륜씨의 아들 통정대부 형흠씨는 철종때 연산오계를 진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이 씨의 고조부인 창식씨에 이어, 연산오계를 길러 온 이 씨의 증조부인 선재씨가 고종때에 연산오계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이 씨가 그랬듯 선친의 유언을 이어받아 연산오계의 혈통을 계승해 온 계순씨는 1968년 처음으로 논산교육청을 통해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정부에 신청했다.

 

당시 계순씨는 흰색 연산오계 수탉 1마리, 암탉 5마리와 검은색 연산오계 수탉 1마리 암탉 6마리 등 털색을 구분해서 사육하며 혼종을 막았다고 한다. 계순씨의 연산오계 사육은 남달랐다. 인삼가루를 사다가직접 캔 잔대와 도라지 뿌리를 사료에 섞어 급여했다고 한다.

 

계룡산 중턱에 연산오계를 방사해서 온종일 지켜보고 기다린 적도 많았다. 뿐만아니라 계순씨는 인근에서 질병이 번지면 연산오계를 깊은 산중으로 옮겨 병이 가실 때 까지 기다리곤 했다.

 

계순씨의 이런 남다른 연산오계를 향한 정성은 아들인 래진씨, 그리고 손녀인 승숙씨에 이르기 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계순씨는 연산오계를 키운지 46년째인 1968년 이렇듯 소중하게 보존한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받기 위해 청와대에 보낼 흰색 연산오계 한쌍을 별도로 길렀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계순씨는 일종의 돌연변이인 흰 연산오계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 씨는 한해에 흰 연산오계는 한두마리 정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귀해서 그랬을까? 계순씨는 이 돌연변이를 별도로 구분해서 검은색 연산오계와 차단해서 혼종을 막았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음을 볼 때 검은 연산오계와 달리, 별도의 종으로 흰 연산오계를 다뤘음을 알 수 있다.

 

계순씨가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나라에 청한 까닭은 연산오계가 육종을 거쳐 키우기 쉽고 잘 자라는 서양에서 전해진 닭에 비해 기르기가 까다롭고 잘 크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장차 연산오계를 기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씨 집안 선대 어른들이 그러했듯이 누구보다 연산오계에 대해 잘 알고 학의학에도 밝았던 계순씨는 연산오계를 이용한 민간요법으로 주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했건만 강인하고 야성을 지녀 기르기가 어려운 연산오계는 더 이상 생명을 잇기가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이 씨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계순씨는 자녀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래진씨가 사업을 한다며 집을 자주 비우는 통에 할아버지를 아버지인양 생각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족했다고 한다.

 

아버지 래진씨가 잦은 사업 실패로 인해 가산을 탕진했지만 계순씨는 이런 아들을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고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후원했다고 한다.

 

계순씨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등록을 실현하지 못한채 천연기념물을 신청한지 6년째 되던 해인 1974년 운명을 달리한다. 


계순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래진씨는 죄책감에 못이겨 술로 날을 지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래진씨는 아버지가 간절하게 바랬던 소망을 접한다. 그것은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는 간곡한 아버지 계순씨의 사연이었다.

 

이후 래진씨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연산오계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조상이 물려준 재산을 자식들을 위해 쓸 수 없다면서 집안에서 물려준 땅을 팔아서 오로지 연산오계를 키우는 데에만 집착했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연산오계에 대한 래진씨의 애착은 가세마저 기울게 했다.

이 씨는 아버지처럼 알고 지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집안 경제의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아버지가 연산오계에만 집착한 나머지 있는 돈, 없는 돈 가리지 않고 쏟아 붓다 보니, 월사금조차 낼 수 없었던 이 씨는 교무실 복도에서 두 손을 든 채 무릎 끓고 벌서야 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이 씨는 학비 걱정에 원했던 대학을 스스로 포기하고, 장학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한동안 그에겐 연산오계와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힘겹게 한 원망의 대상이었다.

 

이 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10년 남짓 일간신문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세상을 쫓아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기자는 매력있는 직업이다. 더구나 이 씨가 속했던 정치부 기자의 주된 취재원은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한 정치인들이니 만큼, 그의 일과 삶이 평범하기 보다는 화려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기자는 수많은 사진을 찍고 글을 쓰지만 그 속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담을 수는 없다. 항상 주변인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까닭에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마음 한 구석엔 허전한 무언가를 남겨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나라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시기에 이 씨 또한 인생의 큰 변화를 겪는다.

 

그토록 원망하던 아버지 래진씨가 몸져 누운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와 경제,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바꿔놓은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8년, 그가 다니던 언론사는 파업을 했고 그 틈에 예상치 않은 휴가를 얻은 이 씨는 고향집에 들렀다.

 

오랜기간 당뇨병 합병증으로 고생해 왔던 래진씨는 두어달 정도 살 수 있다는 시한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때부터 이 씨는 틈만 나면 집에 들러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보살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 연산오계를 고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을 알게 됐다고 한다.

 

딸을 자주 만나는 기쁨때문이었는지 병원측의 진단과는 달리, 래진씨는 그로 부터 4년을 더 살았다. 그 기간동안 이 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고 말한다.

 

이 씨는 “아버지는 열세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병실에서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는 큰 가르침으로 남았다. 연산오계를 통해 나는 자랑스런 아버지를 되찾고, 만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인연인가”라며 연산오계와 함께 대물림해 온 끈끈한 가족사를 전한다.

 

이 씨가 자랑스러워 할 만큼 래진씨는 실제로 연산오계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큰 일을 해냈다.

 

이 씨의 부친인 래진씨는 이런 선친의 바람을 실천에 옮겨 지난 1980년 4월10일 가금류에선 유일하게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256호 지정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이 씨의 할아버지 계순씨가 연산오계가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 낸 묘안인 천연기념물 지정이 12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농업과 생명의 가치’를 몸으로 실천한 연산오계 지킴이

 

지난해 5월 2일 이 씨는 2004년 9월 4일부터 8년간 글을 써 온조선일보 블로그 활동을 마감하면서 인상깊은 글을 남긴다.

 

그는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1년간 휴직하고 고향으로 향한 이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못했다. 2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아버지가 4년을 더 버텼고, 떠안은 연산오계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훌훌 털고 나설 수 없었다”며, “자신의 꿈 또는 생각이나 결정과 상관없이 강풍에 떠밀리고 급류에 휩쓸리 듯 인생길이 달라져 버린 운명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갑작스런 귀향에 따른 어려움도 호소했다.

 

이 씨는 “고향이라고 하지만 친구도 없고 변변한 모임 하나 없는 시골에서 외롭고 힘든 일상을 보내던 제게 블로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며 “댓글님들의 관심과 응원이 제 고된 삶을 위로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술회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 있어 가난과 희생, 그리고 인내를 강요하는 ‘농민’ ‘농촌’ ‘농업’ 은 벗어 던져야 할 굴레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적잖은 이들이 인생 2막을 고향에서 설계했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귀향인들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금새 차가워지기 일쑤였다. 서울에 갔다가 고향으로 되돌아 온 젊은이가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일도 적잖다. 때로는 남다른 학벌과 빼어난 경험이 오히려 극복해야 할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수출위주의 중공업에 치우친 빠른 경제성장은 힘겹고 궁핍했던 ‘농촌’의 기억을 지우는 데 한 몫했다.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불균형성장의 불가피성 역시 우리 사회의 농민 농촌 농업 지우기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 씨가 말하는 “자신의 꿈 또는 생각이나 결정과 상관없이 강풍에 떠밀리고 급류에 휩쓸리 듯 인생길이 달라져 버린 운명”이나, “고향이라고 하지만 친구도 없고 변변한 모임 하나 없는 시골에서 의 외롭고 힘든 일상”은 지금도 여전히 농촌이 처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씨는 지난 8년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를 가리켜 은행의 귀중품 보관창고에 빗대어 ‘추억의 보관창고’라고 말한다.

 

과거 10년간 남의 이야기를 받아 쓰고 파헤치며 속뜻을 풀이 했던 것과는 달리, 스스로의 이야기를 옮긴 블로그의 글들이 신문 지면에 실렸던 기사 보다 더 가치있고 소중해 보였을 게다.

 

연산오계를 소개하는 기사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 씨의 삶을 스토리로 삼고 있다. 대다수 언론은 남들이 지니기 힘든 경험과 기회, 그리고 학벌을 버리고 조상으로부터 이어 받은 토종 연산오계의 생명을 이어가는 이 씨의 마음이 가난한 삶을 말한다,

 

그런데 글쓴이는 잃었던 아버지를 사랑을 되찾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대물림해 온 한국의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의 생명지기를 자처한 그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하고 바른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언론이 하나밖에 없는 천연기념물의 명맥을 이어가는 삶의 가치보다 도시에서의 남달랐던 삶을 더 내세우는 까닭은 빠른 경제성장에만 집착한 나머지, 농촌을 애써 버려야 했던 일그러진 우리 삶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힘들다.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연산오계의 생명을 잇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털어 내는 이 씨는 살아 있는 천연기념물 ‘연산오계’만큼이나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연산오계는 먹거리가 아니라 보약이다
 

생명종 다양성 운동의 일환이자, 우리 농업의 가치를 일깨우는 슬로푸드문화원이 추진하는 ‘한국 맛의 방주 프로젝트’얘기가 나오자, 그는 용봉탕을 우리 토종의 맛으로 등록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집안대대로 간직해 온 용봉탕의 원형을 얘기할 때 그의 얼굴을 상기돼 있었고, 목소리는 들 떠 있었다. 

 

이 씨는 “일부에선 용봉탕에 자라나 지네가 들어가는 것 마냥 떠들어 대지만 실제 임금이 취하던 용봉탕은 용을 상징하는 잉어와 봉황에 빗댄 닭을 주재료로 한다”면서 “연산오계와 잉어, 그리고 더덕과 인삼을 함께 넣어 달인 국물이 바로 용봉탕의 본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들이 용봉탕을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용봉탕을 위한 레시피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면서 “(우리 집안은) 연산오계를 6대째 기르며 임금께 진상해 왔던 만큼 연산오계를 이용한 용봉탕을 만드는 방법 또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임금께 진상하던 연산오계를 이용해서 만든 용봉탕에는 고기와 같은 건더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며 “연산오계의 검은 뼈와 고기, 그리고 잉어, 더덕, 인삼 등을 한데 섞어 고아낸 국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375년째 6대에 걸쳐 연산오계의 명맥을 이어 온 명가의 생명지기가 하는 말이니 만큼. 그냥 흘려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보니 이 씨가 설명하는 임금이 즐기던 용봉탕의 원형은 지금의 삼계탕 보다는 얼마전 경기도 남양주시 슬로푸드문화원에서 가진 슬로푸드 지미교육 기초과정에서 접했던 프랑스인 셰프 로랭 달레가 선보인 콘소메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임금을 위한 진상품으로 쓰인 것 만큼 연산오계는 아주 특별한 요리 재료이다.

 

연산오계는 일찍이 음식이라기 보다 보신용 내지는 약용으로 널리 쓰였다.

 

연산오계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문인이자 학자였던 재정 이달충의 문집인 ‘재정집’에 신돈이 나이들어 오계(烏鷄)와 백마(白馬)를 먹고 정력을 보충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권세를 누리던 승려 신돈이 오계로 쇠한 정력을 보충했다고 하니, 그 쓰임새가 일반 먹거리와는 남달라 보인다.

 

태조 이성계의 증손주인 통정대부 형흠씨, 그리고 이 씨의 증조부인 선재씨가 철종때와 고종때 연산오계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에 앞서 병을 앓던 숙종이 오골계를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연산군은 일반 백성은 물론 정승도 오골계를 먹지 못하게 했으며, 이를 어기면 관직을 빼앗고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조선의 명의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에 따르면 오웅계육, 즉 검은 수탉의 고기는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독이 없다. 이는 가슴이 아픈 심통과 배가 아픈 복통에 주로 쓰인다. 검은 수탉은 명치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풍습으로 경련이 일고 마비된 것을 치료한다. 또 허하고 여윈 것을 보하고 태를 튼튼하게 하고 골절과 심한 종기인 옹저를 낫게 한다. 대나무가시가 박혀 나오기 않을때 검은 수탉의 생고기를 붙인다.

 

연산오계 수탉은 놀라거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사람을 진정시키며, 산모의 대하증, 자궁출혈을 치료하는 데에도 쓰이기도 한다. 

 

동의보감은 ‘오자계육’이라해서 검은 암탉의 고기를 구별하여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검은 암탉의 고기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려 독이 없다. 또 관절이 쑤시고 저린 풍한 습비에 주로 쓰며, 심한 위장병인 반위를 보한다. 연산오계 암탉은 웅저를 치료하고 고름을 빼낸다. 뿐만 아니라 새 피를 보충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 검은 암탉은 산후에 허약해진 산모를 돕는 효능이 돋보인다.

 

연산오계 암탉은 풍과 마비증세, 신경통과 타박상, 골절 등에 효과가 있으며, 간장 신장 늑막열을 치유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동의보감은 특히 ‘뼈와 털이 모두 검은 연산오계가 가장 좋다. 눈이 검은 새는 뼈도 반드시 검으니 이것이 진짜 연산오계’라며, 연산오계의 특징을 묘사하면서 몸을 보하는 효과가 큰 고기임을 강조했다.

또한 ‘연산오계가 중풍에 특별한 효과를 보인다’면서 중풍으로 말이 어늘한 것과 풍한 습비를 치료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국을 끓일 때, 고기와 함께 파, 천초, 생강, 소금, 기름, 간장을 넣고 푹 삶는다며 요리방법까지 일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축산물에 비해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연산오계는 동맥경화와 고혈압을 예방하는 리놀렌산을 쇠고기의 7배~8배, 돼지고기의 3배인 22.6%가량 함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족의 영물’ 삼족오를 연상케 하는 강인한 풍모

 연산오계의 독특한 쓰임새 보다 더 소중해 보이는 것은 그 만이 지닌 남다른 모양새이다.
 

연산오계는 발가락이 4개이며, 다리엔 잔털이 없다. 이런 점에서 서양 오골계나 혼혈 오골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몸을 지탱하는 작은 뒷발을 뒤로 한 채 기다랗게 늘어선 세 발, 크지 않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단단한 몸 맵씨 그리고 진한 검은색 눈과 검붉은 벼슬, 여기다 청록빛이 감도는 검은 털은 그야말로 민족의 영물인 ‘삼족오’를 떠올리게 한다.

 

연산오계는 강원도 험준한 산골짜기에 살아남은 칡소 만큼이나 강인한 모습과 당당한 풍모, 그리고 토종 고유의 날선 몸매가 자랑한다.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자면 보통 닭과는 종이 다른 생물이라는 느낌까지 들게 한다.
 

칠흑같이 까만 눈에 청록빛이 감도는 윤기나는 검은 털, 그리고 날랜 맵씨가 돋보이는 군더더기 없는 몸매는 일반 닭과 격이 다른 품새를 자아낸다.

 

자연속 야생의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은 연산오계
 

연산오계(혼종)와 토종닭이 싸우는 장면 (지산농원과는 무관). 출처 : http://blog.daum.net/ljs38860/53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것은 연산오계가 물려받은 야생의 기질이다.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 탓에 연산오계의 야생성은 일반 닭과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차이기도 하다.

 

연산오계는 날아서 나뭇가지위로 어렵지 않게 오르는가 하면, 곡물사료보다 벌레나 풀, 모래 등을 더 즐겨한다.

 

그리고 체질이 약한 닭을 공격하며 새로운 무리를 몰아내는 습성은 꿩을 연상케 한다. 야생성이 강하고, 거친 외모만큼이나 일반 닭보다 질병에 강한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하루에도 피를 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연산오계의 호전성은 토종 특유의 호전성을 엿보게 한다.

 

수탉들 사이에서 다툼이 종종 일어나기 일쑤다. 이런 싸움속에서 어느 한쪽이 숨지는 사고도 발생한다고 한다.

 

가끔 사람에게 대들어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계모 이씨 역시 수탉의 며느리발톱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 씨는 “암탉보다 체구가 큰 수탉은 번식력이 왕성해 교미를 위해 암탉을 쫓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며 “수탉이 교미하면서 암탉의 깃털을 뽑아버려 오래 묵은 암탉은 털이 많이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수탉의 번식력이 넘치는 만큼 암탉의 모성애 또한 남다르다. 연산오계는 일단 알을 안으면 병아리가 태어날 때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지 않는다고 한다.

 

연산오계의 엄마를 자처하는 이 씨의 일기에서도 연산오계 수탉의 야성(野性)이 잘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9일 연산오계 홈페이지 ‘계모(鷄母)의 농장일기’에 따르면 ‘아이(병아리)들이 크면 일진방, 무녀리방, 환자방, 중환자방, 장애아방 등 방이 여러 개 필요하다. 어렸을 적엔 큰놈, 작은놈, 암놈, 수놈 모두 한 방에서 키워도 되지만, 중병아리 쯤 되면 무리를 나눠 각 방을 쓰게 해줘야 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조숙한 수컷들이다. 대개 암탉보다 수탉의 성장속도가 빠른데 수탉 몇마리는 부화한 지 6개월이 채 안 됐는데 거의 종계급이다. 이런 덩치들이 너덧 마리씩 떼 지어 다니며 바닥에서 어슬렁거리면 체구가 작은 닭들은 무서워 홰위에서 내려오지도 못 하고 사료와 물도 눈치껏 먹어야 한다.
 

성장이 더딘 무녀리 수탉들의 고충도 크지만 암탉들이 겪는 괴로 움과는 비교할 수 없다. 체구가 남자 어른에 해당하는 큰 수탉들은 눈에 불을 켜고 중학생에 불과한 작은 암탉들과 흘레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암탉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으므로 어쩌다 수탉 한 마리가 흘레에 성공하면, 다른 수탉들이 사방에서 득달같이 달려와 현장을 에워싼다. 만신창이가 된 암탉은 사경을 헤매거나 죽기도 한다. 지금까지 암탉 네 마리가 희생됐다. 두 마리는 다리가 부러졌다. (2012.12.9.‘계모(鷄母)의 농장일기’)

 

계룡산 반경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가 아니다
 

연산오계는 지역에 대한 배타성이 강해 분양을 통한 사육기반 확대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계룡산 사방 30리를 벗어나면 연산오계의 특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이 씨는 “학계에선 연산오계가 다른 지방으로 나갈 경우 3대째(F2)부터 유전자 형질에 가시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은 마치 금성산 자락에 위치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운곡리 일대, 그리고 경북 청도군 일대의 감나무를 연상케 한다.

 

이들 지역에선 감에 씨가 없다. 그런데 이들 지역 감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감속에 씨가 생긴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은 그 이유를 ‘흙’에서 찾고 있다. 화산활동과 같은 큰 변화로 인해서 그 지역 토양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얘기다.

 
이런 사례는 국내 뿐만아니라 해외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항산화 능력치(ORAC)가 블루베리의 22배, 석류의 23배, 적포도의 55배, 키위의 120배에 이르는 슈퍼푸드 '아사이베리'는 소주잔 한컵 분량의 원액이 5만원에 팔릴 정도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그런데 이 '아사이베리'는 전 세계에 단 한 곳에서만 생산된다. 그 곳은 바로 사람들의 발 길이 닿지 않는 자연의 보고인 아마존강 유역이다.  

자연속에서 태어나 자라는 생물의 특성상, 지역성이 중요한 변수로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해 온 연산오계는 지역에 대한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지역이 지닌 특성에 오랜기간 적응한 생명의 신비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묘하게도 지산농원이 위치한 충남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선 수많은 까마귀떼가 종종 출몰한다. 지산농원이 자리잡은 계룡산 자락은 연산오계 뿐만 아니라 까마귀에게도 좋은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토종자원인 오골계와는 전혀 다른 품종

 

연산오계를 오골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일본의 토종자원으로 분류된 오골계와는 분명히 다른 품종이다.

 

오골계는 일본의 천연기념물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 FAO)에 일본의 오골계는 'Ogolgye'로 등록된 반면, 연산오계는 Yeonsan Ogye로 등록돼 있다.

 

연산오계는 벼와 털, 피부, 눈자위, 눈동자 심지어 발톱까지 모두 검은 색을 띠고 있는 반면 오골계는 실크처럼 부드러운 솜털 속에 검은 뼈를 지니고 있다.

 

연산오계는 한때 오골계라고 불리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지 28년만에 이 씨가 되찾은 이름이다. 우리 고유의 토종자원에 까지 퍼진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낸 것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3월 26일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회의를 열고 천연기념물 265호 연산 화악리 오계에 대한 명칭변경에 대한 심의를 벌여서 일제 강점기때 오골계로 바뀌어 불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산오계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돌림병에 따른 몰살 막기위한 대책 마련 시급
 

6대에 걸친 아비와 자식간의 약속은 375년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12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룬 천연기념물 등록만으로 연산오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낙관은 금물이다.

 

지난 1981년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1962년 천연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된 경남 기장의 오골계가 돌림병으로 몰사하면서 1981년 지정 해제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씨의 할아버지는 질병이 돌 때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 연산오계를 보호했고, 이 씨의 아버지인 래진씨 또한 이런 일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기장의 오골계가 당했던 처참한 일이 연산오계를 덮치기도 했다. 근래 잦아진 돌림병이 연산오계에 얼마나 치명적인가 하는 문제는 일부 몇가지 사례에서도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지난 1970년 몰아닥친 돌림병으로 인해 래진씨는 기르던 연산오계가 집단폐사하는 일을 겪었다. 다행이 래진씨는 8마리를 간신히 건져 연산오계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아예 바다를 연산오계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2005년 12월 가금인플루엔자가 창궐하자, 이 씨는 인천 앞바다 무의도에 위치한 유기농포도농사를 짓는 실미원 농장의 협조를 얻어 수탉 4마리, 암탉 29마리를 트럭과 배를 통해 옮겼다.

 

2008년 4월에도 신종 가금인플루엔자 HAPI가 퍼지면서 연산오계문화제를 무기한 연기하고 피난 작전에 나서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연산오계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지역을 발굴해서 다양한 지역에서 연산오계를 기르지 않는 한 몰살의 위험은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연산오계는 외부 분양을 금지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의 지정 농장은 이 씨의 지산농원이 유일하다. 몰살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육지의 다양화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이 씨는 과거에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 연산오계를 보존하고 육성한다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이제 더 이상 나라의 천연기념물인 연산오계의 혈통 보전을 개인에게 짐지우기 보다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협력해서 짐을 나누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근친교배 피해 방지위한 사육지 다양화도 숙제
 

한 곳에서만 오랫동안 계속해서 사육하다보니 근친교배에 따라 열성인자가 만연하는 것 또한 문제다.

 

지난 2004년 5월 이 씨는 기르고 있는 3,000마리의 연산오계 가운데 열성인자를 보유하지 않는 것은 4.2%에 불과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지속가능한 보완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늠름한 모습의 강인한 연산오계를 갈수록 보기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지산농원은 과거에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인근에 새로운 농장을 조성해서 연산오계를 길렀으나 주변 주민들의 반발로 새 농장을 포기하고 다시 지산농원으로 오계 식구들을 불러 들여야 했다.

 

당시 지산농원은 기존 농장에서 변함없이 살고 있었던 연산오계들이 다시 집을 찾은 형제인 연산오계 무리를 견제하는 탓에 일부 오계들이 바깥에서 숨지는 것을 비롯해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과도한 생산비 부담에 수익성 낮아 식당운영 도움 안 돼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길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연산오계 사육은 음식점 경영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씨는 지속적인 종계 확보와 후대 생산을 주목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이 씨에게 있어서도 연산오계 음식점은 도태하는 종계와 암탉, 그리고 종계가 되지 못한 수탉을 처분하는 통로이자, 사육비를 조달하는 창구다. 

천연기념물을 보존하는 대가로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긴 하지만 그 것만으론 턱없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연산오계의 낮은 수익성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연산오계는 말이 가금이지 사실상 야생조류에 가깝다. 그만큼 기르기가 쉽지 않다. 특유의 야성으로 인해 강한 기질을 타고 났지만 A4용지만한 좁은 면적에서 집단 사육하는 일반 닭처럼 기를 수 없다. 그랬다간 다툼이 일어나거나 죽기 일쑤다.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두달이면 다 자라는 개량 닭과는 달리 적어도 6개월은 키워야 한다. 손쉬운 배합사료는 잘 먹지 않는다. 그 보다 벌레, 풀, 모래 등을 즐긴다.

 

일반 육계농가들은 일년에 부지런하게 일하면 일년에 6차례 큰 닭을 집단사육해서 길러낼 수 있다. 그런데 연산오계는 많아 봐야 일년에 두 번 큰 닭을 출하할 수 있다.

 

달걀 생산도 일반 산란닭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연산오계 암탉이 부화할 수 있는 크기의 달걀을 생산하려면 8개월~12개월 자라야 한다. 일반 산란닭보다 길게는 두배이상 길러야 하는 셈이다.

 

연산오계 암탉의 마리당 달걀 생산량은 일년에 100개 정도로 산란닭보다 30%~40% 적다. 그나마 철장을 쌓아 가둬서 좁은 면적에서 달걀을 낳은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연산오계 암탉은 스트레스을 이지기 못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산오계의 달걀은 품질면에서 양계장 산란닭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삶으면 흰자위 두께가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육질이 치밀하고 단단하다. 그 맛은 여느 달걀 흰자위와는 달리 쫄깃쫄깃하기까지 하다. 자연속에서 얻은 달걀이니 그 가치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제 값을 다 받기도 어렵다. 

고려때부터 이미 보신용이나 약용으로 쓰이기 시작한 연산오계 고기의 품질은 일반 고기용 닭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1992년 아버지가 늘어나는 연산오계의 처리를 위해 운영하기 시작한 전문음식점을 이어받아 경영하는 이 씨는 평균잡아 한 마리에 3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음식점을 통해서 수익이 남겠느냐고 한숨을 쉰다. 연산오계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탓에 팔면 팔수록 적자라는 얘기다.

실제로 연산오계 사육마리수가 2만마리에 달했던 지난 2001년 7월 그는 매달 400마리, 1,000만원에 달하는 연산오계 음식을 팔았다. 그러나 경영성과는 초라했다. 그는 연산오계 음식을 팔아 매달 300만원씩 적자를 메워야 했던 것이다.


 이 씨는 현재 매년 종계 500마리를 확보하기 위한 2,000마리~3,000마리 남짓한 사육마리수를 유지하고 있다. 연산오계가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았던 1980년보다 종계를 비롯한 사육 마리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한달 평균 판매량은 12년전의 절반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씨의 선친인 래진씨는 논밭을 다 팔았지만 자식들 공부는 커녕, 연산오계 뒷바라지도 힘겨웠던 것이다.

 

연산오계가 천연기념물 지정 받을 당시인 1980년만 해도 인근 지역에는 20여 농가들이 집집마다 수십마리씩 연산오계를 키웠다. 그러나 낮은 수익성으로 인해 연산오계 사육을 포기하는 지역 농민들이 늘어갔다. 급기야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씨의 선친인 래진씨만이 홀로 지역에서 연산오계를 길러야 했다.

 

이 씨의 할아버지 계순씨는 일찍이 키우기 까다로운 연산오계를 기르는 농가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 나머지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걱정한 연산오계의 불안한 미래는 현실화 했다.

 

연산오계 없이는 용봉탕도 없다

 

계순씨가 우려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아들이 연산오계의 천연기념물 지정을 일궈냈고, 그의 손녀가 지금도 연산오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집안 일을 돌보기 보다 아버지 돈을 탕진하며 바깥으로만 향하던 이씨의 선친 래진씨는 어쩌면 이 씨가 그랬던 것 처럼 연산오계에 지극한 정성을 보이던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겼을런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아들 래진씨는 자식들을 뒤로 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아버지의 꿈을 이뤘다. 아버지와 연산오계를 원망했던 이 씨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이룬 아버지의 마지막 4년을 함께하며 연산오계 지킴이로서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이 씨가 연산오계에 계모를 자처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가업을 잇고 아버지를 되찾아준 연산오계와의 인연때문만은 아니다.

 

이 씨는 지난 2005년 겨울 수차례 걸친 사혈을 거듭하는가 하면, 2011년 여름 백제병원, 국립암센터, 서울대병원을 거치면서 난소와 자궁사이에 자리한 종양에 대한 수십차례의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의 종양소동은 자궁근종 진단으로 일단락 됐지만, 이 씨는 누구보다 먹거리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의 소중함을 익히 알고 있는 탓에 그는 우리나라의 유기농 재배를 하는 농가들은 거의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식처럼 아끼는 연산오계를 즐기지는 않는다. 연산오계는 물론 닭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그의 남다른 생각은 연산오계에 대한 식지 않는 애정과 동떨어진 게 아니다. 생명종의 다양성과 좋은 먹거리, 그리고 환경은 서로 구분지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씨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연산오계 지정농장인 지산농원을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가 우리나라의 첫 한국 ‘맛의 방주’ 등재 음식으로 용봉탕을 내세운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산오계가 사라지면 조선시대 임금이 즐기던 최고의 전통음식은 용봉탕을 구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런 그에게도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다름아닌 연산오계의 명맥을 이어갈 다음 지킴이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6대째 내려오는 가업이지만 자신의 길을 이어갈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젊은 시절 바쁜 기자생활에 시달리고, 고향에서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받아 연산오계가 자식인양 정성을 다했던 까닭에 남다른 외모와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혼조차 꿈꾸기 힘들었나 보다.

 

연산오계의 후대 생산에는 온갖 정성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후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이 씨에게서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은 탓에 자식의 월사금조차 내지 못하면서도 연산오계를 천연기념물로 등록하는 데 성공한 아버지 래진씨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구라도 연산오계를 진정으로 기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가족이 아니더라도 맡겨야 하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리는 이 씨에게 “혹시 조카가 이 일을 맡고 나서겠다고 하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지자, 그럴 수도 있겠다며 가업을 대물림하는 가냘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마저 상업성 앞세운 ‘개량’, 필요하나?

 

이 씨는 대화의 끄트머리에 예상치 못한 얘기를 했다.

 

그는 "연산종계의 명맥을 지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재정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연산오계의 개량종 보급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연산오계의 개량’은 연산오계만의 특성이 사라지더라도, 잘 크고 기르기 쉬운 서양 닭과의 교배나 유전자 재조합을 거쳐 상업성 높은 보급종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누구보다 연산오계의 고유한 유전자원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고 있는 그가 이런 고민을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대화를 마치고 지난 20일 지산농원 앞마당에서 열린 제11회 연산오계문화제에 참석한 녹색당원들과 슬로푸드문화원 관계자들을 이끌고 일일이 농장 곳곳을 안내하며 배웅했다.

 

글쓴이는 여느 때와 달라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속에서 더 이상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의 대물림을 위해 특정 가족과 개인에게만 짐지울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연산오계 달걀과 고기세트 상자를 챙겨주며 인사하는 계모 이씨에게 차마 어렵더라도연산오계의 육종이나 개량까지 고민해야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연산오계의 대물림은 오계의 어미를 자처한 그 만의 책임이나 고민이 아닌 모든 이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씨앗’의 다양성에서 부터 ‘맛’의 다양함에 이르기 까지 지구촌 사람들에게 농민·농촌·농업에 담긴 가치와 함께, '있던 그대로'의 소중한 자연을 일깨우고 있는 슬로푸드운동은 지난 15년간 소멸하는 생물종을 발굴하고 이를 이용한 맛을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하는 '맛의 방주'는 사라져 가는 각 국의 토종 종자, 그리고 이를 이용한 전통음식을 전세계 각 국의 '맛의 방주'위원회가 슬로푸드국제본부와 연대해서 목록화 하는 작업으로 유전자조작(GMO)방식을 거친 생명자원은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맛의 방주 (Ark of Taste) 국가별 현황

국가

Ark of Taste 품목수

국가

Ark of Taste 품목수

Italy

412

Netherlands

7

United States

127

Argentina

7

Spain

62

Sweden

6

France

36

Chile

5

United Kingdom

27

Portugal

5

Japan

22

Australia

4

Brazil

21

Peru

4

Switzerland

16

Cyprus

3

Germany

15

Mexico

3

Austria

15

Bulgaria

3

Canada

10

Russian Federation

3

Norway

9

Greece

3

Iceland

2

Albania

1

Ireland

2

Afghanistan

1

Guatemala

2

Hungary

1

Ethiopia

2

India

1

Croatia

2

Romania

1

Bosnia

2

Mauritania

1

Madagascar

2

Slovakia (Slovak Republic)

1

Malaysia

2

Slovenia

1

Lebanon

2

Finland

1

Poland

2

Egypt

1

Morocco

2

Ecuador

1

Mali

1

Turkey

1

Latvia

1

Armenia

1

New Caledonia

2

Denmark

1

Venezuela

1

53개국 합계

865종


국제슬로푸드본부는 여러 국가위원회와 공동으로 ‘맛의 방주’ 구축을 위해 사라지고 있는 ‘씨’와 ‘맛’을 목록화하고, 국제생물종다양성재단과 연계해 목록화한 ‘씨’와 ‘맛’을 지원하는 공동체지원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를 육성하고 있다. 2012년말 현재 그 숫자만도 50여개국 320개에 달한다.
 

국가별 프레지디아 현황

국가

프레지디아 수

국가

프레지디아 수

Italy

177

Madagascar

2

Switzerland

11

Cyprus

1

France

11

Georgia

1

Brazil

9

Belarus

1

Spain

8

Ecuador

1

United States

6

Egypt

1

Netherlands

6

Dominica Republic

1

Norway

6

Mali

1

United Kingdom

5

Mauritania

1

Chile

5

China

1

Peru

4

Canada

1

Mexico

4

Croatia

1

Argentina

3

New Caledonia

1

Ethiopia

3

Bolivia

1

Germany

3

Cape Verde

1

Bosnia

2

Japan

1

Bulgaria

2

Portugal

1

Morocco

2

Afghanistan

1

Poland

2

Armenia

1

Sweden

2

Ireland

1

Malaysia

2

Austria

1

Lebanon

2

Turkey

1

Guatemala

2

Hungary

1

Romania

2

India

1

국가합계

48개국

전통식품 및 토종종자 목록수

305개


지구촌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사라지는 지원의 생명자원 보존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도 하나 둘씩 사라지는 지구촌의 불안한 ‘생명’은 다름 아닌 인류가 맞이해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문득 근래 비정상적으로 부쩍 늘고 있는 흰색 연산오계를 걱정스하는 이 씨의 불안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친다.

 

지난번 구제역마냥 어느날 갑자기 신종 조류인플루엔자가 급습하거나, 근친교배와 상업성을 내세운 육종으로 인해 연산오계가 아예 사라지거나 원형의 모습을 상실한다면 이 땅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삶은 편안할까?

 

글쓴이가 만난 몇 안되는 우리의 토종은 그 모습이 늠름하고 강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대대로 누려온 자연의 모습을 빼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위적인 것에 너무나 약해 보였다.

그리고 상업성을 앞세운 개량이나 육종, 그리고 유전자 재조합은 ‘생명’에게 ‘자연’이 아닌 ‘자본’을 강요하고 있었다.

 

획일적이고 규격화한 가치의 사슬속에서 다양성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경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구촌 슬로푸드운동이 국제생명종다양성재단과 함께 맛의 다양함과 생명종 다양성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프레지디아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 주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나라의 소멸하는 씨와 맛을 되살리고자하는 공동체 프로젝트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스스로 맛의 방주를 구축하고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프레지디아를 이끌지 못한다면 우리를 돕고자하는 이웃 나라 사람들의 도움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마저 힘겨운 대물림을 이어가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천연기념물 ‘연산오계’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이해와 아낌없는 성원이 필요한 때이다.

 

계모 이승숙씨는 지난해 5월 지난 8년간 운영해 온 블로그를 마치면서 어려웠던 시절 블로그가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구였으며 여러 댓글님들이 큰 힘을 주었다고 술회했다.

 

사람들이 한번쯤 시간을 내어 연산오계 홈페이지(http://www.ogye.or.kr)를 둘러보고 우리 토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계모 이씨와 마음을 함께할 때, 연산오계는 특유의 강인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이 땅과 하늘을 영원히 공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성훈 agrinews.co.kr @에그리뉴스 agrinews.kr 

Posted by ezfarm.kr

10월 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아시아오세아니아 슬로푸드국제대회(Asio Gusto)를 앞두고 소멸위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토종 종자와 향토음식을 발굴・복원하고 지속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한국 ‘맛의 방주(Ark of Taste)’프로젝트가 본격화하고 있다. <에그리뉴스>는 이에 따라 ‘한국의 토종을 찾아서’ 기획연재를 통해서 우리나라 고유의 맛과 생물을 찾아보고 맛과 생물종 다양성의 중요성을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생명종 다양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칡소의 '부활'이야기


한국의 토종을 찾아서 (1) 경기 양주시 이태남씨의 ‘꿈담 칡소’


 

경기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 45-1번지. 우리 농촌에선 보기 드물게 어린이들을 위한 음식체험과 한우농장 견학을 병행하는 ‘꿈담’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꿈담’은 ‘꿈을 담은 우리음식 배움터’의 줄임말이다. 이태남씨는 ‘꿈담’을 운영하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우를 이용한 우리음식 만들기 체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음식연구가이자 불곡산 한우농장을 경영하는 농촌 주부이기도 한 이 씨의 ‘꿈담’속에는 50평 남짓한 음식 조리 및 체험시설과 함께 자리한 불곡산 한우농장에는 100마리에 달하는 한우가 자라고 있다.


▲불곡산 한우농장에서 자라는 친숙한 누렁이 한우

 

농촌주부가 한우농장과 함께, 음식조리 및 체험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 불곡산 한우농장 입구에 자리잡은 음식조리체험시설인 ‘꿈담’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꿈담’보다 남다른 것은 바로 불곡산 한우농장에서 자라는 30여마리의 ‘칡소’다.

 

칡소 무리는 호랑이 줄무늬를 자랑하며 누렁이 한우에서 찾기 힘든 강인함을 선보이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줄무늬와 함께 늠름한 자태를 드러내 보이는 칡소 황소.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간신히 찾아 볼 수 있을 법한 칡 소. 글쓴이는 사진을 통해서 그 존재를 확인했던 칡 소가 이 곳에서 자라고 있으리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

 

실제로 글쓴이는 이렇게 많은 칡소가 떼지어 있는 모습을 접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강인한 칡소의 모습

 

얼마전 글쓴이는 울릉도를 방문했을때, 그 곳에 자리한 칡소 고기 전문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몇 년전부터 울릉군은 농가들에게칡소를 보급했고 현재 300마리 정도의 칡소가 자라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건만 그 실체를 접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칡소를 서울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농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남다른 일이었다.

▲입주변의 희색 무늬는 칡소만의 독특한 외모다.

 

이 씨가 칡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8년 정부가 유례없는 촛불시위를 뒤로 한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면서 소 값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던 때이다.

 

당시에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국제곡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우리 한우산업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사료값 부담으로 키우던 소를 굶기는 농가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원도에서 고집스레 칡소의 명맥을 이어가던 농가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씨 부부는 강원도의 한 농장에서 먹지 못해서 쓰러진 칡소들을 자신의 농장으로 옮겨와서 키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칡소를 키우기 시작한 이 씨는 30마리가 넘는 칡소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 겨울 전국의 축산농가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구제역 사태로 인해 이 씨는 아끼던 칡소를 땅에 묻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칡소에 대한 이씨의 남다른 사랑은 구제역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칡소를 묻고 나서 대학과 협력해 칡소를 부활시켰다. 농촌에서 한우를 키우며 살아 온 칡소에 대한 이 씨의 남다른 애정이 30마리 남짓한 불곡산농장 칡소 무리를 되살린 셈이다. 


▲칡소 송아지. 검은 코는 한때 잡종의 표시로 인식돼 칡소를 잡종으로 전락시켰다. 칡소송아지는 자라면서 줄무늬가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삼국사기와 동의보감, 그리고 서기 357년 축조된 평양 소재 고구려 16대 고국원왕 안학3호분 벽화에서 검은 소(흑우)와 누렁이(황우)와 함께 등장하는 칡소는 왜 자취를 감췄을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멸종위기에 처한 삽살개 마냥, 칡소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 자취를 감춘 게 사실이다. 묘한 일이긴 하지만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칡소는 한우의 또 다른 품종인 흑우와 함께 일본 화우개량의 밑소로 사용됐다. 실제로 일본 화우 개량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일본의 화우혈통계보(족보)를 살펴 보면 화우의 선조는 ‘조선우(朝鮮牛)들’로 기록돼 있다.
 


다양한 한우 품종의 우수한 유전자원이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일본 화우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이다.

 

해방이후에도 칡소는 누렁이를 위주로 한 한우개량사업에 떠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칡소의 아름다운 호랑이 무늬는 잡종의 빌미를 제공하게 됐고, 칡소는 팔기도 힘든 잡소로 전락했다.

 

이런 칡소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그 때에는 강원도 산골짜기의 일부 농가들이 칡소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들어 흔해빠진 누렁이보다 칡소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씨는 “얼룩배기 칡소는 누렁이 한우와는 달리, 인공수정이 아닌 자연교배를 통해서 태어난다”고 말했다.

 

농협 한우개량사업소를 비롯해 국내 종축관련 기관들이 선발한 씨수소에게서 정액을 채취해 암소에게 주입하는 인공수정과는 달리. 칡소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원해 하던 그대로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신체 접촉을 통해 대를 이어갈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칡소는 야생의 성질이 아직도 남아 있어 유순한 우렁이 한우와는 달리 기르기가 쉽지 않다.

 

이 씨는 “송아지가 태어나면 칡소는 매우 사나워 진다”며 “주인이고 뭐고 할 것 없이 나대는 통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 토종동물이 그러하듯 칡소 또한 야생의 기질이 살아 있는 것이다.

 

이 씨는 “칡소는 그 숫자가 적고, 고기 맛이 뛰어나 서울 도심의 백화점으로 누렁이 한우보다 3배 높은 값에 팔려 나간다”면서 “칡소는 우렁이 한우처럼 등심단면적을 통한 등급제 적용을 통해 가격을 매기지 않고 백화점, 고급음식점 등지와 직거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들어 이 씨의 꿈담과 불곡산농장은 농촌진흥청이 추진하는 교육농장으로 선정됐다.
 

교육농장은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농촌의 현장 농업체험 교육을 접목해서 교육의 성과를 드높인다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양주시 농업기술센터는 관내 농산물을 이용한 안전한 먹거리 공급시스템 구축을 위해 ‘로컬푸드 체험교육’을 실시한다. 꿈담(꿈을 담은 우리음식 배움터)에서 열리는 이번 체험교육은 관내 초·중학교와 연계하여 오는 11월 20일까지 총 13회에 걸쳐 35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이 씨는 ‘꿈담’에서 그동안 추진해 왔던 한식상차림, 규아상만들기, 수저사용법, 한우떡갈비 만들기 등 음식체험 교육과 더불어, 불곡산농장의 칡소, 누렁이 한우를 직접 보여주고 그 차이와 다양성을 느끼게끔 해서 생명종 다양성의 소중함을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그동안 먹거리와 생명교육을 보완해오던 교육농장을 생명종 다양성의 필요성을 체험할 수 있는 ‘생명교육의 중심’으로 역할을 달리 하겠다는 얘기다.

 

한우를 아끼는 마음이 칡소를 되살린 것 마냥, 앞으로 이 씨의 꿈담과 불곡산 한우농장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생명의 다양성과 다양한 맛의 소중함을 전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끌어 가는 생명교육의 씨앗으로 자리하기를 기대해 본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누렁이 위주의 한우개량정책으로 멸종위기에 놓였던 칡소가 오늘날 토종 한우로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오랜 기간 무던히 우리의 것을 기키고 가꿔온 고집스런 농부들의 하늘로 부터 물려받은 장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지식인'이라는 별칭을 얻은 농부가 이제는 도심속 어린이들에게 생명의 다양함을 선보이며 다양성의 조화를 일깨우는 '지식의 전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락처 : 이태남 010-9337-9901

▲인터뷰 도중에 이태남씨가 직접 말아 온 국수

 

 

김성훈 newsking@agrinews.co.kr @ 에그리뉴스 agr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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