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다양성'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11.30 ‘토종’의 방주가 생명의 세상을 살린다

지난달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부터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 대해 기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래의 원고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일정 부분 편집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월간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 특집 기사와 함께 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편집됐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글쓴이의 뜻을 충분히 고려한 편집자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이 원고 덕분에 저는 유기농 현미쌀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원고에 대한 특별한 대가였습니다. 책에 실린 원고를 구할 길이 없어 제가 보낸 원고를 그대로 싣습니다. <편집자주>

 

자연을 닮은 작고 다양한,

토종의 방주가 생명의 세상을 살린다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부와 웰빙을 사람들이 나누며 지속 가능한 사회협동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생산,가공,유통 등 전지구적으로 식량을 독과점화하고 있는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의 획일화한 먹거리 공급과 마케팅 구조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슬로푸드운동은 이윤에 집착하는 현대의 물질 중심의 가치에 맞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고전의 가치를 내세운다.

 

슬로푸드운동은 이를 위한 대안으로 소농을 중심으로 한 지역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서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 까지 다국적기업의 독과점에 맞서는 체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대(network)를 추진한다.

 

올해 한국에서 처음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는 고전의 가치를 전승하기 위한 사람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이런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슬로푸드운동은 다국적 식품 기업들의 독과점화를 미화하는 주입식 광고미디어에 대응하기 위해 농식품 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한 음식 교육을 실시해서 소비자들을 공동생산자(coproducer)로 육성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은 모든 사람들은 연령이나 성별, 직업에 관계없이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다양한 지식들이 한데 섞여서 조화를 이룰때 좋은 대안을 만들고 교육(education)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물의 특성과 역할 그리고 생산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단순한 먹거리 요리 교육은 필요없다고 이야기한다.

 

맛의 방주(Ark of Taste)는 단순히 소멸 위기에 놓인 종자나 음식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공동체(convivium)의 밑천인 토종의 종자와 음식을 되살려 지역내에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선순환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수단이자 전략이다.

 

슬로푸드운동은 맛의 방주 등재에 그치지 않고 맛의 방주 등재품목을 지역의 생산자, 가공업자, 유통인, 소비자, 교육·문화단체 등이 함께 가꾸는 토종살리기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presidia)를 육성한다. 그리고 지역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의 공동체를 복원하고 지역 사회와 경제를 살찌우는 로컬푸드 농부장터인 어스마켓(earth market)’을 키워 나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도시 사람들이 농업 지식을 공유하고, 소농을 양성하기 위한 도시농업 보급 차원에서 슬로가든(Slow garden)’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슬로시티역시 이런 철학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런 활동의 목적은 토종 먹거리 자원을 기반으로 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 해서 사람들이 부와 웰빙을 나누고자 함이다. 이로써 인류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가 달성될 것이라고 여긴다.

 

슬로푸드라는 낱말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자본의 그늘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의 오랜 지식과 경험을 일깨워 사람과 생명, 그리고 지구가 조화를 이뤄서 살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는 농부들과 요리사들의 노고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기를 권유한다.

 

맛의 방주는 사람들의 일상속에서 가장 친근하게 자리하고 있는 음식을 매개로 해서 선조로부터 대대로 이어받은 고전의 지식(人性)을 실천해 나가는 열쇠이자 첫 단추이다. 사람들은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나고 삶을 영위한다. 따라서 아버지, 할아버지가 살아 온 지역의 다양한 생명 그리고 먹거리는 다음 세대의 건강한 삶과 유전자(DNA)를 결정하는 변수로 자리한다.

 

먹거리의 원천인 토종 생명자원들은 오랜 기간 지역의 자연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며 그 지역 사람들에게 최적의 식재료를 제공해 왔다. 사람들은 지역의 다양한 생명을 기르고 맛과 요리를 대물림 하며 경제활동의 밑천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토종은 지역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밑천이자 원천이었던 셈이다.

 

토종은 그 지역에서 오랜기간 자연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생명의지를 담고 있다. 토종의 생명들은 이윤을 쫓는 자본의 산업사회를 거부한다.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조금씩 나누고 공유해 온 토종은 자본과 기계를 기반으로 한 대량의 단작 방식의 기업농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산업사회는 생산성을 문제삼아 토종을 퇴출하기에 이르렀고, 자본가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농업의 단순화, 단종화, 대규모화는 결국 몇가지 품종이 전세계 먹거리를 좌우하는 기형적인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를 낳았다. 패스트푸드로 사람들을 현혹한 자본은 노동을 단순화하고 비용을 줄이는데 급급했다. 식품기업들은 생산지역, 품종, 생산자에 따른 다양한 맛은 출처를 알 길이 없는 획일화한 조미료, 그리고 그럴싸한 브랜드로 대체했다.

 

패스트푸드를 앞세운 식량의 독과점화는 식량 공급의 불균형을 낳았다. 인류가 먹기에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지만 40%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굶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전통 농업의 원천인 토종이 밀려나니 소농이 퇴출되고, 지역공동체는 무너져 갔다


반면 도시는 비대해지며 실업, 범죄, 환경 등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화석연료 자원을 고갈과 대멸종, 경기침체와 중산층 붕괴, 식량위기와 환경오염과 같은 산업사회의 풀기 힘든 숙제는 소농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삶의 회귀를 대안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런 이유에서 슬로푸드운동이 토종을 앞세우고 지구촌 어느 시민사회운동단체보다 물질이 생명을 왜곡하는 패스트푸드, 그리고 유전자조작농산물(GMO)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토종자원의 보존을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슬로푸드운동이 로컬푸드(local food), 공정한 음식(fair food), 먹을 권리(The Right to food) 집착하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슬로푸드운동은 오랜시간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온 생물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의 뿌리를 다시금 생각하고, 어렵사리 이를 지키고 가꾸어 가는 농부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해 하고 그들을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람이 소중한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한다.

맛의 방주는 이런 소망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담고 있다.


앞으로 50년간 지구촌은 엄청난 변화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이 아닌 인간이 초래한 이상기후, 대멸종의 시대가 그 사례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자본의 물질문명과 과학을 뒷받침해 온 화석연료 자원의 고갈에서 비롯할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슬로푸드를 넘어설 수 없다. 그것은 석유자원을 한없이 베풀지 못하는 자연이 만든 규칙이고 질서다. 화석연료의 고갈은 사람의 물리적 이동거리를 제한 할 것이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기계문명은 심각한 변화를 맞을 것이다.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로컬푸드가 활성화할 것이다. 도시를 지탱해 온 자원의 이동거리 축소는 도시로 부터의 이탈을 초래할 것이다. 자본이 농부에게 단순한 노동을 강요하는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가장 절박한 숙제는 돈보다는 먹거리가 될 것이다. 스스로 먹거리를 챙기는 소농의 지역공동체 사회가 도래하는 할 것이라는 선각자들의 예언은 그리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자초한 대멸종 사태를 맞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생명다양성(Biodiversity)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까닭은 인류는 자연의 생태계에 얹혀 살아가야 하지만 생태계는 사람이 없어도 아쉬울 게 없기 때문이다.

 

소농의 원천이자 지역의 밑천인 토종을 일깨우는 맛의 방주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이다. 그리고 맛의 방주를 지원하는 공동의 프로젝트인 프레지디아는 지속 가능한 토종을 위한 참여의 장이다.

 

올들어 제주 흑우 전남 장흥 돈차(청태전) 자염(충남 태안 등) 제주 푸른콩장 경남 진주 앉은뱅이밀 충남 논산 연산오계 칡소 (경북 울릉 등) 경북 울릉 섬말나리 등 8개 품목이 슬로푸드 국제본부 생명다양성재단이 운영하는 맛의 방주에 이름을 올렸다.

 

그 속에는 대를 이은 토종지킴이들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끊이지 않는 희망이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지역 문화원, 미식 교육가, 학자, 농가맛집, 교육농장, 전통 누룩과 막걸리제조업체, 화장품기업에 이르기까지 토종도우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작은 씨앗 하나가 지역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지난 20여년간 농민 농촌 농업의 주변인으로 빌붙어 살아 온 글쓴이는 토종이 전하는 깊이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우리 먹거리를 온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땅이 비좁다고 남의 생명창고를 마냥 빌려 쓸 수 없다. 땅이 좁으면 좁은대로 산이 높으면 높은 대로 그 나름대로 농업은 우리 주변에 오랜기간 자리해 왔다. 우리의 생명은 늘 가까이에 있는 다른 생명들과 조화를 이뤄 이어져 왔다.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바다건너 땅에서 자란 먹거리가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앞마당에서 자란 고유의 작은 생명보다 우리 몸에 더 나을리 없다. 우리의 자연을 닮은 좁은 땅에서 적지만 다양한 고유의 생명을 가꾸는 작고 많은 농부들이 한국의 DNA에 맞는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

 

한국의 토종, 그 속엔 우리 뿌리와 미래가 담겨 있었다.

 

* 20131025일 녹색연합 발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보낸 원고.

Posted by ezfarm.kr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