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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26 생각만큼 자라는 농업

농업의 범위부터 바르게 정의해야 우리 농업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집행될 수 있다.

농업의 범위가 어떻게 해서 '씨'에서 '맛'에 까지 이르며,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별도로 추출해서 해석해서는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할까? 왜 식생활교육의 목적가운데 농업의 가치 확산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없었을까?

 

그 답은 '가장 오래된 미래'라고 불리우는 농업이 자연의 생명을 다루는 기초산업으로 다른 산업들과 깊은 상호의존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농업을 가리켜 6차산업, 애그리즘, 애그리비즈니스, 어메니티, 식농교육 생명산업 등으로 즐겨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 정부의 슈퍼부처로 국방부와 함께 농업부가 꼽힌다. 그리고 UN산하 전문기구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UN FAO(식량농업기구)이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농업의 범위를 생산에만 한정짓는 경향이 있다. 이는 수출위주의 중공업에 우선한 불균형성장론, 그리고 이를 정당화한 비교우위론에 따른 것이다. 수출을 하려니 상대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산업의 수출을 허용해야 했고, 그것은 불균형 성장과 더불어 농업을 애써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불균형성장은 경제성장을 빠르게 도모할 수 있는 산업을 우선 육성하되, 나중에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산업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을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일관되게 규모 위주로 진행됐다. 이런 경제정책은 오늘날 정도를 넘어선 양극화의 빌미를 제공했다.

나는 지난 1980년대 후반에서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 까지 학부와 대학원 시절 주된 전공과목으로 '농관련산업론'을 접할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미시경제학, 보다 구체적으로 산업경제학, 또는 산업조직론에서 등장하는 분석도구인 S(시장구조)-C(시장행위)-P(시장성과)기법을 동원해서 농업관련산업의 실태를 따지는 방법을 익혔다.

 

그 때 거의 모든 농식품 시장에서 일부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현상이 나타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대학원 전공은 농업경제학이었는데, 백화점을 비롯해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미국의 창고형 할인매장(대형할인점), 편의점의 마케팅 기법, 상품구성, 경영방식 등도 농업이라는 이름아래 공부했다.

훗날 후배들로 부터 농업관련산업론 과목이 폐지됐다는 얘기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농업관련산업론에다 SCP분석기법을 적용해서 가르친 선생님이 그의 모교로 자리를 옮긴 탓이다.

 

그 다음부터 이상하리만치 학과의 핵심과목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갔고 50년된 나의 학과는 결국 폐과 당했다.

 

나는 모교의 무지함에 치를 떨었다. 나는 업무시간에 짬을 내어 학교구조조정 공청회에 참석하고, 학부시절 눈에 익은 부총장님을 만나 폐과하면 나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영영 배출할 수 없을 것이라 으름장을 놨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에서 교수가 매우 중요한 존재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기자시절, 글쓴이는 생명공학에 대해 나름대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생명공학은 자연계열에서 배우는 농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당시 과학기술부 산하의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일하는 대다수 과학자들이 농대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했다. 그 때 나는 우리나라의 내놓으라 하는 생명공학자들을 두루 만났는데 모두 농대 출신들이었다.

뿐만아니라 신약개발에 있어 수의학자을 비롯한 농업과학자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서울중앙병원장을 지낸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개발자, 이호왕 교수 역시 수의학과 출신이었다.

 

황우석 교수가 그러하듯 수의학과 교수들은 거의 다 의학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을 꽤 오랫동안 출입했는데, 그 때 많은 낙농가들로 부터 황우석 교수가 얼마전 농장에서 함께 일했다는 얘기를 접했다. 황 교수의 농촌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기자시절 생명공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덕택에 생명공학 역시 농업의 한 갈래 내지는, 농업의 범위속에 포함시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얻었다.

앞서 언급한 농업관련산업에 대해 다소 생소할 것 같아서 사전적인 의미를 몇가지 덧붙이고자 한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농업관련산업(agribusiness, 農業關聯産業, のうぎょうかんれんさんぎょう)은 농업과 그 관련산업인 농업용의 생산수단 공급부문, 농산물의 가공·유통까지 총괄한 개념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는 농업을 넓은 의미에서 그 관련산업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산업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농업관련산업을 구성하는 산업군으로 ▲농업생산자재 부문, ▲농업부문, ▲ 농산물 가공 ·유통부문으로 구분했다. 여기엔 많은 농가들과 기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농업관련산업 정책은 바로 이들 각 부문의 상호관계를 거시적인 입장에서 분석하여 하나의 통합체로서의 조화적 발전을 기하려는 정책이다.

 

농업관련산업이라는 용어는 1957년 I.H.데이비스와 R.A.골드매그의 저서 애그리비즈니스의 개념(A Concept of Agribusiness)이 출판되면서부터 널리 사용됐다.

 

이는 농업의 개념을 상공업과의 자원이동에서 생산·유통에 이르기까지 확장해, 여러 산업들과 동반 상승하는 산업으로 한단계 더 도약하게 만들었다.

식품과학기술대사전은 농업관련산업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농업관련산업은 농업을 둘러싼 여러가지 산업을 뜻하는 것으로 예컨대, ▲농기계, 농약, 화학비료 등의 농업생산 자재산업 ▲농산물가공업 ▲농산물·식품의 유통산업 ▲외식산업 등을 총칭한다.

농촌진흥청은 농업관련산업을 농업생산투입재, 농업생산 및 농산물유통과정의 총체이자, 농업과 관련한 전후방 산업(前後方 産業)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농업관련산업'이란 새로운 개념의 도입은 '농업'을 가축이나 농산물의 생산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 생산을 포함해 생산된 농산물의 가공과 유통, 수출입은 물론 비료,농약, 농기계,사료,종자 등 농자재산업까지 포함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0년 3월 이종상 공주대 지역사회개발학과 교수는 '농업관련산업의 취업자수의 추계 및 그 변화 1995-2000-2005'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농업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농업생산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관련산업에 필요한 농업관련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농업인력이라 함은 농업생산 분야에 필요한 인력뿐만 아니라 농업투입재 분야, 농산물의 가공분야, 농업투입재와 농산물의 유통산업 분야 등의 인력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농업의 생산분야 뿐만 아니라 농업과 전ㆍ후방관련산업의 각 부분별로 필요한 인력을 예측하여 양성해야 한다”며 “앞으로 농업교육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수산분야를 제외한 농업과 농업관련산업 취업자수를 1995년 2,687,455명, 2000년 2,417,940명, 2005년 2,019,066명이라고 산출했다.

 

이중 농촌산업 생산분야에 종사하는 농민은 1995년 2,272,113명, 2000년 2,075,477명, 2005년 1,667,051명이다. 또 농축산업관련산업 취업자수는 1995년 415,342명, 2000년 342,463명, 2005년 352,015명이다.

이렇게 하나의 산업분야에서 200만명이상의 고용효과가 나타나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

 

수산업을 제외했음에도 이 정도다. 이는 생태·환경·건강과 맞물려 있는 농업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준다. 또한 농업이 우리 사회·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와 자동차산업을 합치더라도 수산업을 제외한 농업 및 농업관련산업 고용효과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에따라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을 위해 농수축산업을 희생한다는 정책발상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력을 지닌 나라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주장이다.

 

어쩌면 한중일 FTA협상이 성사될 경우 자국 농어업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에 적잖은 사람들이 당혹스러워 할런지도 모른다.

 

선진국와 우리나라 사이에 실존하는 농업에 대한 커다란 인식 차이를 실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가이드라인은 20개월령 미만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30개월령이란 마지노선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교수는 수산업을 제외한, 농업관련산업의 범위를 전후방으로 나누고, 후방농축산물관련산업속에 농림어업서비스, 도소매, 비료 및 농약, 사료, 임산물, 플라스틱제품, 금융 및 보험, 의복 및 섬유제품, 펄프 및 종이제품, 육상운송, 기타사업서비스, 특수목적용 기계 및 장비, 일반목적용 기계 및 장비, 사업관련 전문서비스, 운수관련서비스, 사회단체, 목재 및 목제품, 부동산, 전력, 석유제품, 건축건설, 통신, 금속제품, 의료 및 보건, 육상운송, 의약품 및 화장품, 정밀기기, 의복 및 섬유제품, 기타식료품 등을 포함시켰다.

그는 또한 전방농축산물관련산업을 구성하는 업종으로 음식점 및 숙박, 기타식료품, 도소매, 정곡 및 제분, 육상운송, 의료 및 보건, 고무제품, 건축건설, 섬유사 및 직물, 사료, 토목 및 특수건설, 의약품 및 화장품, 담배, 임산물, 음료품, 공공행정 및 국방, 오락서비스, 기타서비스, 교육서비스, 육류 및 낙농품, 가죽제품, 섬유사 및 직물 등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농업의 범위를 재해석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농업이 기초산업으로서 다른 산업과의 상호의존관계가 깊은 만큼 그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성장잠재력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연중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열린 농정이슈 심층토론회에서 농림수산식품산업분야의 생명공학 시장 규모를 113조9,087억으로 추정했다.

 

김 연구위원은 “농림수산물, 식품가공·유통, 농자재 등 농업관련산업의 범위가 생명산업 입장에서 볼 때에는 협의의 개념에 해당한다”며 “농업 및 농업관련산업에다 종자 의약품을 비롯해 환경복원, 토양 및 수자원관리, 자연경관 유지, 자원 재활용과 같이 인간과 자연이 연계된 모든 산업을 추가하는 ‘광의의 개념’에서 생명산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생물의약, 생물화학, 바이오식품, 생물환경, 생물전자, 생물공정 및 기기, 바이오에너지 및 자원, 생물검정 및 정보서비스 등 생물과학 8개 분야에 대한 농업과의 연관도(상호의존관계)가 61.4%에 이른다”면서 “이는 8개 생물과학분야와 비농업 부문의 연관도인 38.6%를 훨씬 웃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농업의 범위를 더 넓게 바라보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농업의 범위를 필요 이상으로 축소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 또한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 농업에 다양한 가치를 더할 필요가 있다.

 

농업을 생산에만 국한 짓는 그릇된 편견이 우리 사회 경제속에서 지속한다면 우리 농업의 미래 또한 그 범위만큼이나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폭좁은 농업에 대한 해석이 농업을 버리고 자동차와 휴대전화의 수출에 매달리는 어처구니 없는 통상협상을 낳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길이 없다.

 

50여년간 이어진 전통있는 학과를 경쟁력이 없다며 하루 아침에 폐과하는 단순 용감한 대학의 조치 또한 농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웃지못할 촌극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더할 따름이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대선주자로 나선 한 후보가 “먹거리는 생명”이란 문구를 남긴 것은 표를 얻기 위한 그럴싸한 구호나, 농업에 대한 과장된 애정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 농업이 먹거리를 제공하고 곧 생명산업이라는 것은 지구촌 어디에서든 통하는 명백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꽃등심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춰 한우농가들이 마블링이 이쁜 한우고기 생산을 위해 애쓰듯이, 어느 날 소비자들이 지방이 적은 부위를 선호한다면 한우농가들 또한 등심단면적에 쏠린 사육방식을 달리할 수 밖에 없다.

 

‘씨’로 부터 ‘맛’에 이르기 까지 생산과 소비를 한데 엮어 설명하는 지구촌 먹거리 운동인 슬로푸드 운동이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둘로 나뉠 수 없다는 호소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소불위의 자본이 잉태한 패스트푸드를 서서히 극복하고 있는 이유는 농업의 범위를 ‘생산’에 가두기 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는 가치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이제 농업에 대한 비뚤어진 생각을 바로잡고 올곧은 시선으로 농민 농촌 농업을 바라볼 때도 됐다.

 

우리가 농업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면 매일같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먹거리가 나아진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보다 건강해지고, 덩달아 농민이 춤추고, 농촌이 되살아날 것이라 믿는다.

 

김성훈 newsking@agrinews.co.kr @에그리뉴스 agrinews.kr

Posted by ezfar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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